<이렇게 누워만 있어도 괜찮을까> : 오늘도 고립의 시간을 살아가는 여성 청년들

신승아
신승아 · 삐딱하고 멜랑콜리한 지구별 시민
2024/01/31

잉여 인간,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 니트족. 미디어에서 다루는 고립 청년의 이미지는 대개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시간 죽이는 게임 폐인’ 내지는 ‘경제 활동을 포기한 채 방구석에서 뒹굴뒹굴하는 백수’로 재현된다. ‘고립’에 덧씌워진 자극적인 이미지만 반복해서 소비해 온 탓일까. 사람들은 고립 청년을 ‘사회 부적응자’, ‘실패자’, ‘의지가 약한 사람’으로 일축하며 가차 없이 돌을 던진다. 하지만 세간의 편견과 달리 고립 청년 문제는 ‘경제력’이라는 기준만으로 진단하기 어렵다. 고립 상태는 은둔 개념에 한정되지 않는다. 당사자의 가정 환경, 성별, 지역, 학력, 노동 형태, 장애 유무, 질병 등 상황과 위치에 따라 처지는 천차만별이며, 고립의 시간을 견디는 나날 속에는 결코 수치화할 수 없는 감정들이 얼기설기 엮여 있다.

나는 만 30년을 살면서 굵직한 고립을 두 번 겪었다. 첫째 번 고립은 만 열여덟 살 때였다. 검정고시 합격 후 고등학교 졸업장을 취득하자마자 우울과 무기력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잊을만하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빚 문제가 삶을 할퀴고 지나갔다. 시곗바늘이 자정을 가리키면 절로 공포감이 밀려들었다. ‘오늘은 제발 무사히 잠들 수 있게 해주세요.’ 간절한 소원은 사흘이 멀다 하고 부서졌다. 어머니의 휴대폰 진동음이 울리면 몸이 경직되고 식은땀이 흘렀다가 일순 긴장이 탁 풀리면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휴대폰 통화 버튼을 누르기 무섭게 고주망태가 된 남자의 욕설이 날아들었다. 그 남자는 자신의 피해 망상을 기정사실화하여 어머니가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났다고 몰아세웠다.

억울하다는 해명 따윈 통하지 않았다. 참다못한 어머니가 전화를 받지 않고 전원을 꺼버리면 집 앞까지 쫓아와 대문을 두들기며 고성방가를 질러댔다. 어머니는 동네 망신을 피하기 위해 그 남자의 전화를 순순히 받았고, 갖은 인신공격과 모욕을 고스란히 감내했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광경을 만 열네 살 때부터 무려 8년간 어머니와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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