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살인인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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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치1 · 주로 애니메이션
2024/02/27
영화 <사형에 이르는 병> 리뷰
스틸컷 출처: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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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그게 살인이라서, 가 아니라 그것이 살인인데도, 이다. 연쇄살인을 소재로 하는 영화 <사형에 이르는 병>에서 살인은 전부 과거에만 머문다. 살인자는 오래전에 검거돼 형 집행을 기다리는 처지다. 그러므로 현실적인 위협이 되지 못한다. 교도소 면회실에서만 모습을 보이는 살인자는 실상 목소리로만 실재한다. 영화는 살인자의 감언에 감화되는 인물을 매개로 시대의 어두운 음성을 녹취한다.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20세기의 야만은 멀리 있지 않다는.
 
도쿄 소재 삼류대학에 재학 중인 '마사야'에게 편지 한 통이 도착한다. 7년간 24건의 살인을 저지른 '하이무라 야마토'의 편지다. 사형을 언도받고 복역 중인 그는 중학 시절 마사야가 종종 들른 빵집의 주인이기도 했다. 편지는 황당하게도 24건의 살인 중 야마토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범행도 섞여 있으니 그 진범을 마사야가 잡아달라는 내용. 마사야는 야마토를 만나기 위해 교도소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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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르케고르의 전언을 패러디한 '사형에 이르는 병'은 무엇을 의미할까.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죽음에 이르는 병이 절망이라면, 사형에 이르는 병은 질서다. 죽음에 이르는 병(절망)이 인간 정신의 만성 질환을 일컫는다면, 사형에 이르는 병(질서)은 야마토 개인의 내적 논리에 불과하다.
 
야마토의 질서. 살인자의 질서. "자신만의 규칙"에 따라 빵집을 운영하고 생활을 일구듯, 체계화된 살인의 루틴을 차근히 밟는 것. 살인의 목표물은 고정되어있다. 10대 후반 착실한 모범생 타입. 그에 맞춰 범행 대상을 고른다. 우연을 가장해 대상에 자신을 각인시킨다. 일상의 교집합을 만든다. 점점 범위를 넓혀 접촉 빈도를 늘린다. 스스럼없는 사이가 된다. 기회를 노려 납치한다. 정해진 장소에 감금한다. 이어지는 고문. 역시나 고정된 패턴이 있다. 신체 제일 가장자리, 손톱부터 시작해 구석구석 뽑고 썰고 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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