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 라이브즈>, 간극으로 풀어낸 인연

홍수정 영화평론가
홍수정 영화평론가 인증된 계정 · 내 맘대로 쓸거야. 영화글.
2024/04/02
※ PD저널에 기고한 글입니다.
※ <패스트 라이브즈>에 대한 스포일링 있습니다.
<패스트 라이브즈> 스틸컷
[PD저널=홍수정 영화평론가] 최근 <파묘>가 천만 관객을 불러 모으며 돌풍을 일으키는 동안, 이 작은 영화는 조용히 스크린에서 자기만의 오묘한 빛을 발하고 있다. <패스트 라이브즈> 이야기다. 영화는 개봉 전부터 화려한 수상 이력으로 주목받았다. 제58회 전미 비평가 협회 작품상, 제44회 런던 비평가 협회상 외국어영화상. 하지만 <패스트 라이브즈>는 거창한 수식어로만 남기에는 아까운 영화다. 그 안에 '진짜'가 있으니까. 이 영화만큼이나 사랑과 관계에 대해 차분히 성찰하는 작품이 최근에는 없었다. 그래서 향이 좋은 사람이 떠난 자리처럼 무언가가 계속 은은하게 남는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영화를 생각한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간극'의 영화다. 거리의 간극, 시간의 간극, 정서의 간극. 그리고 그 틈새에는 하나로 정의하기 어려운 관계의 결들이 파도처럼 일렁인다. 

영화의 시작에서 노라(그레타 리)는 한국을, 해성(유태오)을 떠난다. 거리의 간극으로 시작되는 영화. 이어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노라가 해성과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을 때. 그래서 노트북을 통해 화상 통화를 주고받을 때. 안부 연락 같지만 실은 연애를 하는 듯한 그 간지러운 시간. 그들이 화상 통화를 하며 주고받는 대화 사이에는 약간의 시간 차가 발생한다. 원거리 통화의 특성이다. 노라가 말을 하고, 해성이 거기 답하기까지. 1초 혹은 2초… 약간의 공백. 그런데 <패스트 라이브즈>는 편집해도 될 것 같은 이 '시간차'를 굳이 우리에게 보여준다.

우리는 그들이 통화 중에 서로의 말을 기다리는 시간을 함께 경험한다. 이 순간은 꽤나 설렌다. 그들 사이를 오가는 말이 다정하므로. 말에 마음을 살짝 담아 보내고, 그에 대한 답을 기다리기까지의 1초 혹은 2초. 짧은 시간의 떨림은 고스란히 전달된다. 나는 이 장면에서 셀린 송의 재능을 느꼈다. 그녀는 노라...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2016년 한 영화잡지사에서 영화평론가로 등단. 영화, 시리즈, 유튜브. 문화 전반에 대한 글을 씁니다. INFJ
131
팔로워 1.9K
팔로잉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