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영화]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그린 북>

전새벽
전새벽 · 에세이 '닿고 싶다는 말'을 썼습니다
2024/01/18
출처 : 영화사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김혜순의 시 제목이다. 떠올릴 때마다 아득해지는 문장이기도 하다. 이 아득함은 아마 인간의 고유한 정서일 것이다.
 
우리도 달처럼 무언가를 맴돈다. 그 중심은 가족이기도 하고 연인이기도 친구이기도 할 텐데, 김혜순 방식으로 ‘지구’라고 통칭해도 되겠다. 지구는 별거 아니다. 즐거운 일이 생기면 소식을 전하고 싶은 사람, 맛있는 걸 먹으면 생각나는 사람, 축제 때 옆에 있고 싶은 사람, 부스스한 얼굴을 하고 있어도 꼭 안아주고 싶은 사람이 우리의 지구다. 한데 그 별거 아닌 지구, 죽으면 큰일난다. 그게 달에게는 전부이기 때문이다. 시 제목을 떠올릴 때마다 아득해지는 이유다.
 
지구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선한 마음이 요구된다.(키케로, “먼저 우정은 선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다.”) 더불어 용기와 배짱도 요구되는 일이라, 어떤 사람은 지구고 뭐고 다 포기하고 산다. 하지만 인간은 반드시 어딘가를 돌아야 하는 존재라, 지구가 없으면 혼자 머릿속이라도 팽글팽글 돌리기 위해 술을 찾게 된다. 망망대해를 혼자 해치고 갔던 범선의 이름을 딴 위스키, ‘커티삭’ 같은 것을 말이다.
 
*
 
여기, 혼자서 커티삭이나 마시기로 선택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닥터 돈 셜리. 1960년대 초 뉴욕에 살고 있는 천재 흑인 피아니스트다. 비록 재능과 부를 가졌지만 그는 무슨 연유에선지 매우 고립된 삶을 살고 있다.
그와 멀지 않은 곳에 토니가 살고 있다. 일하던 나이트클럽이 공사에 들어가는 바람에 당분간 놀게 생긴 이 이탈리아계 백인 남성은 빨리 다른 일을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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