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코올의 날 ㅣ 총 맞은 것처럼

악담
악담 · 악담은 덕담이다.
2024/02/17

 
영화 쟈칼의 날

내가 가지고 있는 책 가운데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책은 하서 출판사에서 < 세계 추리 문학 전집 > 으로 나온 " 재코올의 날 " 이다. 발행일이 1974년이다. 당시 정가가 1700원인데, 나는 이 책을 2500원 주고 샀다. 발행일이 1974년이었던 이 책은 우여곡절 끝에 1976년판으로 바뀌었다. 세로쓰기'다. 하지만 구닥다리'라고 해서 모양새나 만듦새가 볼품없을 거란 생각은 착각에 가깝다. 튼튼한 사철방식으로 만들어진 양장본은 클래식한 맛이 있다. 더군다나 황변 현상으로 인해 누렇게 변색된 종이가 바스라질까 봐서 조심스럽게 넘기다 보면 < 장미의 이름 > 에 나오는 눈먼 호르헤 수사'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착각이 드는 이유는 종이 재질이 꽤나 거칠어서 점자로 된 책을 읽는 기분이 나기 때문이다. 손끝에서 나무의 섬유질이 느껴질 정도'이다. 이 느낌이 좋다 ! 오래된 책이 가을 벼처럼 누렇게 변색이 되는 이유는 산성지'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반면 요즘 사용되는 종이는 중성지'이다.
 
다들 아시겠지만 중성지로 만들어진 요즘 책'은 기생오라비처럼 창백해서 광원이 직사광일 경우 눈부셔서 잘 보이지 않는다. 어찌나 미끄러운지 종이를 넘기다가 손가락이 미끄러질 판이다. 이미지 컷이 삽입된 사진이나 미술 관련 책이 아니라면 중성지'보다는 산성지'가 낫다. 종이 위에 손끝을 올릴 때 느껴지는 담백하면서도 건조한 촉감은 애교는 없으나 속정이 깊은 애인 같다. 더군다나 책장을 넘길 때 중성지처럼 붙지 않고 쉽게 낱낱이 떨어져서 침을 묻히거나 종이를 구겨서 넘길 필요가 없다. 또 하나의 장점은 종이 표면이 고양이 혓바닥처럼 까끌까끌해서 색연필로 밑줄을 긋고 나면 깊이 스며들어 색이 진하다. 중성지에 그어진 밑줄이 수채화 물감으로 그은 획 같다면, 산성지에 그어진 밑줄은 유화 물감으로 그은 획 같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산성지의 수명이 500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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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호 하드보일드 센티멘털리티 악담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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