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제주 정착기 _ 못다한 이야기

박순우(박현안)
박순우(박현안) · 쓰는 사람
2021/12/03
연작을 시작하긴 했지만, 무려 네 편까지 쓰게 될 줄은 몰랐어요. 주말에는 글을 쓰기가 어려워 틈나는대로 서둘러 쓰다보니 그래도 매일 한 편씩 올릴 수 있었네요. 가끔 이렇게 열심히 글을 올리는 이유가 뭔지 스스로도 궁금해요. 어느덧 제주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못다한 이야기가 많아서 두 편으로 나눌까 하다가 그냥 한꺼번에 올려요. 그래서 글이 많이 길어요. 이번 글이 어쩌면 가장 궁금해 하실만한 제주 생활에 대한 이야기예요. 

자연과 함께 하는 삶

자연과 함께 한다고 하면 나무나 풀, 하늘이 떠오르실 거예요. 그런데 사실 그 자연엔 벌레도 함께예요. 제주엔 벌레가 많아요. 엄청 많아요. 가끔 손바닥만한 땅을 들여다보면 정말 놀라워요. 그 작은 땅에도 정말 많은 생명체들이 꼬물거리고 있거든요. 그 작은 생명들도 인간 못지 않게 바쁜 하루하루를 살아가요. 세상 가장 부지런한 개미, 제주 음습한 곳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공벌레, 풀밭마다 뛰어다니는 섬서구메뚜기, 농작물마다 매달린 노린재, 낯선 지구생명체 지네까지. 

저는 어릴 때부터 벌레를 별로 무서워하지 않았어요. 말괄량이였는데 사마귀 싸움을 붙이기도 하고 수많은 잠자리를 맨손으로 잡기도 했죠. 그런 제게도 제주의 지네는 너무 낯설고 혐오스러웠어요. 남편은 지네에 물린 적도 있어요. 저를 만나기 전에 한 민박집에서 그랬다고 해요. 남편은 그 낯선 생명체가 싫어서 잠도 못자고 그렇다고 잡지도 못하고 밤을 꼴딱 샜다고 해요. 다음날 민박집 주인 할아버지께 말씀드리니 너무 자연스럽게 방으로 들어와 지네를 탁 잡으시더라는 이야기를 들었죠. 제주 토박이분들은 어릴 때 친구들과 산에 가서 잔뜩 지네를 잡아 팔기도 했다고 해요. 한약재로 쓰이니까요. 

제주에 살기 시작하면서 한동안 지네가 출몰하면 저도 좀 싫었어요. 무서웠고요. 남편이 물린 트라우마로 직접 잡는 걸 잘 못해서 제가 나서서 잡곤 했죠. 제주와 관련한 여러가지를 다 적응해도 지네는 끝끝내 적응하지 못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마저도 적응이 되네요. 이제 나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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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씁니다.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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