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처음 그에게서 부끄러움을 제대로 배웠다

월영씨
월영씨 · 정시퇴근언론노동자
2023/02/16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교토로 여행을 가려던 이유 중에 하나는 윤동주와 정지용. 특히 윤동주 시인의 자취가 그곳에 있어서다. 윤동주는 1942년 3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대학 문학부 영문과에 입학했지만 반년 뒤 교토의 도지샤대 영문과로 전입학 한다. 교토의 도지샤대 영문과에는 윤동주가 흠모하던 시인 정지용이 다녔다. 정지용은 1923년 도지샤대 영문과에 입학해 학업을 마치고 다시 조선으로 돌아왔다. 윤동주는 정지용의 시집을 중학교 시절 읽으며 남몰래 시심을 키웠다. 15세 차이가 나는 둘은 생전에 만나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윤동주의 유고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의 발문을 정지용이 쓰면서 둘의 인연은 시인과 시인으로 맺어졌다. 모국어가 박해받던 시대. 언어를 생명처럼 여기는 시인의 숙명을 감내했던 윤동주와 정지용은 정작 자신이 남긴 시처럼 소박하고 평화로운 노년을 맞이 하지 못했다. 윤동주는 해방되기 전 불량선인이란 죄목으로 끌려가 후쿠오카의 차가운 감옥에서 1945년 2월 16일 순국했고 정지용은 해방 전후의 혼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도 꿋꿋하게 제 길을 가다 결국 한국전쟁 중 서울에서 납북되던 과정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기 때문이다. 

6월의 초순의 교토는 청명했고 습도가 높지는 않았다. 교토 중심가의 주택가에 자리 잡은 게스트하우스는 1900년대 초반에 지은 전형적인 일본 가옥. 대만 학생으로 보이는 처자가 능숙하지 않은 영어로 반겨주었다. 내 영어 또한 초등학교 수준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의사소통은 수월했다. 방을 배정받고 들어가 보니 다다미방. 평생 처음으로 팔베개를 하고 다다미방에 누워보니 윤동주의 '자화상' 한 구절이 절로 떠올랐다.

 밤비가 속살거리면 그 시의 여운이 더 깊게 우러나왔겠지만 홀로 여행에 청승은 더했을 터. 다행히 날은 구름 한 점 없었고 조그만 일본식 정원에는 작은 연못과 화초들이 저물어가는 6월의 저녁을 고스란히 받아 차곡차곡 어둠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도지샤 대학은 숙소에서부...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자판을 두드리며 밥벌이 한지 어느덧 십 몇년 째
9
팔로워 7
팔로잉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