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
영국에 온 지 수년이 지난 어느 저녁,
부슬비가 오는 것이 새삼스러울 것이 없던 그날도 난 평소에 걷던 길을 가고 있었다.
시내 중앙을 지나 사람들의 왕래가 조금은 뜸 해지는 길가로 접어들면 은행 건물이 하나 나왔는데, 그날도 그 노숙자는 같은 자리에 앉아있었다.
사실 그를 눈여겨 본 적은 없다. 다만 인도 한복판에 앉은 그와 부딪치지 않기 위해서도 조심해야 했으므로 안 볼 수가 없었을 뿐이다. 무엇인가 바닥에 깔고 낡은 국방색 외투의 옷차림에 긴 턱을 가득 덮은 턱수염의 그 모습은 변치 않는 전매특허였기 때문에 기억하려 애쓸 필요도 없었다.
그날도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그를 피해서 옆으로 걸어 지나쳤다. 그 순간 내...
생각이나 경험을 나누는 그 순간은 국경과 나이에 상관없이 친구가 되는 시간 아닐까요?
겨울이다 싶은 사이에 찾아온 봄날의 하루를 보내고 몇 자 적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