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phetamine, LSD 그리고 옥시콘틴

곽경훈
곽경훈 인증된 계정 · 작가 겸 의사
2023/02/06
1.
영국의 날씨는 예측하기 힘들다. 지나치게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다만 긍정적인 다양성과는 거리가 있다. 하늘이 쉽게 찌푸라고 빗방울이 떨어지며 우중충한 날씨가 엄습할 때가 많다. 그래도 여름은 지낼만 하다. 그리 덥지 않고 다른 계절과 비교하면 햇살이 찬란한 시간이 길기 때문이다. 

그날도 그런 '영국의 여름'에 해당했다. 남서부의 해안을 찾아 휴가를 보내거나 공원의 풀밭에 누워 노닥거리기 좋은 날씨였다. 그러나 날씨와 달리 사람들 사이에는 불안 가득한 긴장이 넘쳤다. 지나치게 가열되어 폭발하기 직전의 보일러 같은 분위기였다. 

갑작스레 싸이렌이 울리자 그 불안과 긴장이 폭발했다. 식당과 숙소에서 튀어나온 사람들이 넖은 공터에 있는 비행기를 향해 질주했다. 그들 가운데 몇몇은 비행기에 뛰어올라 열린 창을 통해 조종석에 앉았다. 나머지는 그런 몇몇을 도와 이륙을 준비했다. 굉음과 함께 엔진의 예열이 끝나면 기체 앞부분에 프로펠러가 달린 단발비행기는 차례대로 흙바닥의 활주로를 달려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안타깝게도 비행장을 떠난 비행기의 상당수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 틀림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돌아와도 출격할 때와 같은 모습은 아닐 가능성이 컸다.

1940년 7월부터 10월까지 영국에서 위와 같은 상황은 매우 흔했다. 1939년 9월 폴란드 침공을 시작으로 나치독일은 노르웨이, 덴마크, 네들란드, 벨기에, 프랑스를 순식간에 점령했다. 남은 국가가 중립국인 스위스와 스웨덴, 동맹국인 이탈리아, 사실상 동맹국이나 다름없는 스페인임을 감안하면 서유럽 전체가 나치독일의 세력 아래 있었다. 홀로 남은 영국은 매우 취약했다. 바다에서는 유보트 전대가 상선을 격침하며 '제국의 생명선'을 위협했다. 육군은 기적적으로 당케르크에서 탈출했으나 전차와 야포 같은 장비를 버려두고 몸만 빠져나온 것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강력한 독일공군이 날마다 도시와 공장, 비행장을 폭격했다. 다행히 영국은 당시 막 실전에 배치된 레이더를 이용하여 독일공군이 영국에 도착하기 전에 미리 움직임을 알아...
곽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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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권의 메디컬에세이를 쓴 작가 겸 의사입니다. 쓸데없이 딴지걸고 독설을 퍼붓는 취미가 있습니다. <응급실의 소크라테스>,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 <반항하는 의사들>, <날마다 응급실>, <의사 노빈손과 위기일발 응급의료센터>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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