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필
2023/05/14
혹시 암이 아니냐고 묻긴 했지만, 이게 오지랖 내지는 오버하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잠깐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당직의사는 친절하게 답해 주었다. 자기가 보기에 염증이 너무 심하긴 하지만 암은 아닌 것 같다는 소견이었다. 다만 영상분석전문의가 다음날까지 최종결과를 판독해 줄 거라고 했다. 그래도 암은 아닐 거니까 큰 걱정은 하지 말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췌장염 치료를 위해 일단 일주일 정도 입원하고 그 원인에 따라 추가조치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어쨌든 암은 아니라고 해서 크게 안심이 되었다. 극심한 통증과 3만이 넘는다는 심각한 염증수치도 일주일 입원이면 치료가 가능하다고 하니 뭔가 터널의 끝이 보이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문득, 이제는 나도 모르게 불쑥 의사에게 암이 아니냐고 묻게 되는 상황이 서글펐다. 2021년이면 1971년생인 내가 만으로 꼭 50세가 되는 해였다. 그해 여름 코로나19 백신접종이 연령별로 시작됐을 때 나는 50세 이상으로 분류됐었다. 그때 동네 병원에 접종하러 갔더니 당연하게도 내 또래의 동네 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접종하기 전 간단하게 의사와 상담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대기석에 앉아 있자니 상담하는 얘기가 문 너머로 들려왔다. 하필 그날따라 나와 나이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분들이 많았다. 간단한 근황 상담이었는데도 그 속에서 내 또래의 일상과 살아 온 삶의 궤적을 느낄 수 있었다. 대기실에 앉아 있는 아저씨, 아줌마의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입원을 해야 한다는 말에, 나는 이왕이면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부속병원으로 입원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의사도 내 사정을 이해하고 그렇게 알아보겠다고 했다. 나는 다시 한밤중에 구급차를 타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일은 생각보다 더디게 진행되었다. 의사와 간호사가 이따금 내게 와서 아직 그쪽 병원과 협의 중이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말을 거듭했다. 밤 11시가 넘어서야 전원이 불가하다는 최종 통보를 받았다. 그쪽에서 병상이 모자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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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물리학자입니다(jongphil7@gmail.com). 유튜브 채널 “이종필의 과학TV”(https://c11.kr/1baom)도 운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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