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물리학자의 해방일지 1] 시금치 데치는 남자

이종필
2023/04/23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집안 살림이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남자도 밥하고 빨래하고 설거지해야 하고, 여자도 못질하고 전구 갈고 실리콘 건을 들어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치인 것을, 혼자 사는 나는 나이 오십이 넘어서도 매일매일 깨닫는다. 가사노동에서의 남녀평등은 혼자 사는 사람들에겐 반강제로 이미 구현돼 있는 셈이다. 
집안일은 정말 해도 해도 끝이 없다. 한번 눈에 뭔가가 들어오면 연쇄적으로 몸이 움직이게 돼 있다. 어쩌다 거실 바닥에 지지 않은 얼룩을 발견해서 그거 쫓아 지우다가 부엌바닥과 조리대, 가스레인지까지 다 닦고는 내친 김에 화장실까지 청소하는 식이다. 
집안일 중에서도 빼먹을 수 없는 것이 식사준비이다. 한번 제대로 밥상 차려서 먹으려면 장보고 재료 손질하고 요리하고 이것저것 준비하는 데에만 1시간도 넘게 걸린다. 그렇게 정신없이 차려 놓고 막상 밥상 앞에 앉으면 반쯤 기진맥진한 상태가 된다. 덕분에 밥은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다만 그렇게 허겁지겁 먹는 식사시간이 보통은 오래 가지 않는다. 혼자 하는 식사는 더 그렇다. 밥 먹는 리듬을 끊는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밥 먹을 때 TV를 켜 놓으면 도움이 된다. 재미있는 드라마나 영화, 스포츠 경기에 잠시나마 집중하면 밥 먹는 리듬을 흐트러뜨리면서 좀 여유롭게 식사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혼자 하는 식사시간이 30분을 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다 먹었으면 이젠 정리하고 설거지할 시간이다. 반찬을 많이 꺼냈으면 반찬통 다시 집어넣는 것도 일이다. 남은 음식물쓰레기는 따로 잘 버려야 한다. 음식물에서 나온 쓰레기라도 각종 뼈, 조개껍데기 등은 일반쓰레기로 버린다. 식사시간을 T라 하면 설거지하고 뒤처리하는 시간도 대략 T와 비슷하고, 식사를 준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최소 3T 정도 되는 것 같다. 물리학자들은 이런 표현을 즐겨 쓴다. 다만 이 추정치는 정확한 측정과 통계처리를 거친 결과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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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물리학자입니다(jongphil7@gmail.com). 유튜브 채널 “이종필의 과학TV”(https://c11.kr/1baom)도 운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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