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환경의 격변기다. 북한과 러시아는 상대방이 침공을 받을 경우 자동 개입하는
군사 협정 을 맺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는 한국 독자 핵무장론이 화두로 떠올랐다.
이근 교수(서울대 국제대학원)는 한국 좌우파의 안보 상식 모두에 "No!"라고 외치는 국제정치학자다. 그는 최근 북러 협정부터 핵무장론까지 거의 모든 안보 이슈에서 기존 상식에 반하는 주장을 내놓는다. 당신은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선 이 연구자의 주장을 따라가 보자.
북러 군사 협정, 윤석열 외교의 실패인가? 다른 정부라면 막을 수 있었나?
No. 지금 문재인 정부가 집권하고 있더라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한국 정부가 어떤 외교정책을 펼쳤든 북한과 러시아의 접근이라는 현실을 바꾸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북-러 접근은 동북아시아 문제를 넘어서는 국제정치 대변동의 결과다. 유라시아 대륙 거대한 육상 제국의 후손들이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서구의 침투라는 위협으로 보고 이를 통제하기로 노선을 정했다. 그게 중국과 러시아다. 제국주의적 세계관을 가진 리더 푸틴과 시진핑이 미국과 서구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미치지 않는 영향권을 형성하려 한다. 이것은 실로 거대한 변화다. 냉전 종식 이후 30여년간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사실상 전 세계를 포괄하는 질서였다. 이 때는 중국도 러시아도 그 안에서 국익을 모색했다. 세계시장에 통합되어 경제 발전을 추구했다. 이게 바뀐 것이다. 이제 두 제국은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영향을 통제할 수 있는 제국의 질서를 구축하려 한다. 두 제국의 관점에서 북한은 중요한 파트너다. 핵이 있으니까. 과거 6자회담 시절에는 중국도 러시아도 북한의 핵 보유를 썩 반기지 않았다. 자신들도 그 일원인 핵확산 방지 시스템을 흔드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자신들의 전략으로 활용할 수 있는 핵 보유국을 영향권 내에 두고 싶어한다. 이제 이들은 북한 비핵화를 원하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의 대러시아 메시지가 종잡을 수 없는 건 사실이다. 전략적 구상대로 한다기보다는 즉흥적으로 반응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정부가 이 상황을 관리했다면 북-러 접근 자체가 없었으리라 보지는 않는다. 우리가 북한을 배제하고 대신 중국-러시아가 주도하는 제국 질서의 일원이 되겠다고 해야 할 판인데, 어떤 정부도 그런 선택은 할 수 없다.
한국 외교는 미국 일본 편향을 바로잡고 국익을 최우선으로 중국 러시아 관계를 관리해야 하는가?
No. 냉전 종식 이후 30년간의 시기였다면 그 말이 맞지만, 나는 그런 시절이 끝났다고 생각한다. 지금 나오는 논평들 대부분은 ‘냉전 후 30년’의 문법, 하나의 질서 아래에서 각자 국익을 극대화하려던 시절의 사고방식이다. 그 시절이라면, 한국 정부가 균형을 잃고 러시아 관리를 소흘히 해서 북-러 접근이 일어나 국익이 훼손되었다고 보는 게 맞는 설명이다. 나도 그 시절에는 국익 중심으로 상황에 따라 중국 우호 정책, 러시아 우호 정책을 펴는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 시절의 외교란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글로벌 질서로 확고하게 버티는 가운데, 그 질서 안에서 누가 좀 더 국익을 많이 가져갈지 겨루는 경쟁이었다. 그런 환경에서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때로는 이 나라, 때로는 저 나라와 연합하는 게 맞다. 이제는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제국 질서가 경쟁하는 시대다. 북-러 접근도 그런 시대 변화의 산물이다. 따라서 국제질서 전체를 보면서 새로운 시대의 눈으로 읽어야 한다. 한반도만을 중심으로 사고하면 안 된다. 이런 시대에는 균형외교나 ‘국익 중심 합종연횡’ 같은 접근법이 성립하기 어렵다. 어떤 질서의 편에 설 것이냐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자유주의 질서냐 제국 질서냐의 양자택일이라면, 한국의 선택은 전자일 수밖에 없다.
북한 핵은 강대국들의 억지력 때문에 사용 불가능하므로 한국은 핵 개발이 필요 없나?
No. 국제질서에 근본 변화가 찾아왔기 때문에, 핵이라는 무기의 의미도 따라서 바뀌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75년동안 핵은 원리상 ‘5대 강국’만 가질 수 있었다. 5대 핵보유국이 곧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다(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5대 강국은 모두 핵 확산에 반대하는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었다. 이 시절의 질서로 보면, 한국은 핵보유국이 될 수 없다.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제국의 질서가 충돌하는 지금은 핵이 ‘현상변경 세력’의 무기로 의미가 바뀐다. 러시아는 핵 덕분에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도 본토를 공격받을 걱정은 하지 않는다. 핵이 있으면 본토 공격을 걱정하지 않고 현상변경을 추구할 수 있다. 두 질서가 충돌하는 시기에 특히 제국 질서 추구자들(중국과 러시아)에게 대단히 중요한 이점이다. 제국의 관점에서 보면, 자기 영향권 아래 자기 말고도 핵보유국이 하나 더 있으면 전략적 이점이 크다. 러시아나 중국이 자기 핵 말고 북한 핵을 활용해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위협할 수 있다면? 자신이 지는 부담을 핵보유국끼리 분산시키면서 미국에 대해 동시다발 핵위협이라는 강력한 카드를 확보할 수 있다. 핵에 대한 강대국의 이해관계는 따라서 이렇게 바뀐다. “우리 질서 내에서는 핵 확산이 이득, 상대편 질서 내에서는 핵 확산 방지가 이득.”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에 접근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잠재적으로 이란도 이 연합에 가입할 수 있다. 이란 역시 옛 육상 제국의 후예이고, 미국 주도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동화되지 않았으며, 서구의 침투를 위협이라고 생각하고, 핵 개발을 시도한 이력이 있다. 북한 핵의 의미도 이미 바뀌었다. 이제 북한 핵은 ‘강대국이 억눌러야 할 대상’에서, ‘제국 질서를 위해 사용 가능한 무기’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한국은 이 ‘새로운 의미의 북한 핵’을 어떻게 억지할지 새롭게 생각해야 한다.
핵 확산 방지 체제가 있기 때문에 한국 핵개발은 불가능한가?
No. 나는 핵확산 방지 체제가 사실상 무너지는 티핑포인트를 향해 가는 중이라고 본다. 변화된 국제 환경과 과거의 핵확산 방지 시스템이 충돌하는 것이다. 이대로 간다면 핵확산 방지 체제는 ‘자유주의 국제질서 국가들의 핵만 일방적으로 방지하는 체제’가 될 것이다. 민주국가들은 핵 개발을 제약 당하는 반면, 이른바 ‘불량국가’들은 핵확산 방지 체제가 부과한 제재를 우회하는 생태계를 구축하여 핵을 개발할 수 있는 세계가 오고 있다. 이러한 제재 우회의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국가들이 바로 핵확산 방지 체제의 핵심 멤버인 러시아와 중국이니, 핵확산 방지 체제는 붕괴의 길로 가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핵 개발은 더 이상 철 없거나 무책임한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변화하는 국제 환경을 진지하게 숙고한 결론일 수 있다. 동아시아에서 제국 질서의 핵 보유국만 셋이다. 반면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동아시아 민주주의 국가의 핵 억지력을 오직 미국에만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도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속하는 핵 보유국의 다변화’가 필요해진다. 유럽에는 영국과 프랑스가, 중동에는 이스라엘이, 인도양에는 인도가 있다. 동아시아 민주주의 국가에만 없다. 미국은 민주국가여서 국내 여론이 중요한데,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러시아와 북한의 핵을 모두 억지한다는 부담을 미국 여론이 언제까지 지려 할까? 물론 한국의 핵 보유는 반가운 시나리오는 아니다. 핵을 갖지 않는 상태로 핵 억지력을 보유하는 게 더 낫다. 중국과 러시아가 과거 ’냉전 후 30년’처럼 자유주의 국제질서로 다시 편입되는 게 가장 좋다. 하지만 둘 다 우리 힘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목표가 아니라 미국, 중국, 러시아의 선택에 달린 문제다. 우리는 이 강대국들의 선택이 우리를 반갑지 않을 시나리오로 끌고 갈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열쇠 중의 하나는 “위협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조건이 성립할 때”(예를 들면, 중국이 타이완을 침공하고 미국이 이를 억지하지 못하는 상황 등이 있다) 동아시아의 두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과 일본이 핵을 공동 개발 - 공동 운영하는 것이다. 일본은 지금도 핵물질을 생산할 수 있다. 핵탄두 개발도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국가다. 한국은 미사일 사거리 제한을 풀었기 때문에 핵무기의 타게팅을 폭넓게 할 수 있다. 북한 뿐만 아니라 중국 정치 경제 중심지들이 범위에 들어온다. 두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과 일본이 핵을 공동 운영하면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이를 용인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첫째, 한국이나 일본의 독자 핵개발보다 안전하다. 두 나라가 동의해야 핵이 사용되므로, 한 나라의 오판으로 핵이 사용될 위험이 줄어든다. 둘째, 한국은 중국이 끊임없이 중국 제국 질서에 편입시키려 시도하는 나라여서, 한국의 핵이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무기가 맞느냐는 의혹이 제기될 여지가 있다. 한국과 일본이 공동 운영하는 핵은 그런 의혹으로부터도 자유롭다. 물론 한국과 일본이 실제로 핵무기를 함께 조립하고 배치하는 결정이 내려진다면 이는 정말로 거대한 위협이 동아시아에 덮쳐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안보 환경이 닥쳐올 때의 이야기다. 한일 핵 공동개발 운영은 현실적으로는 많은 장애가 있다. 하지만 국제 질서가 바뀐다는 것은 안보 환경이 근본적으로 변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과거의 틀에서 벗어난 안보 전략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하며, 한일 핵 공동운영은 새로운 시대를 대비할 새로운 상상의 한 예다. 이제 우리 지식인 사회와 정치권이 이 정도 검토는 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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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관율 에디터
국민의힘이 핵무장론을 꺼내들었다. 다들 우려하지만 논의 자체는 나쁘지 않은 일이다. 갈수록 인구는 줄어들고 군에 대한 신뢰는 바닥인데, 세계 곳곳은 전쟁 또는 재무장 중이다. 새로운 위기에 대응하려면 기존 재래식 병력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강력한 비대칭 전력에 의지해야 한다. 당장 핵무기를 만들기 어렵다면, 1년 안에 핵무기를 발사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그것도 당장은 어렵다면, 적어도 사회 전반적으로 진지하게 핵무장을 논의해서, 우리 안보 위협에 신경쓰지 않으면 극동에 핵 도미노가 일어날 것이라는 신호를 서방 동맹국들에 보내야 한다. 분명 핵무기는 위험하지만, 나라를 잃는 것보다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꿈을 잃는 것이 낫다.
국민의힘이 핵무장론을 꺼내들었다. 다들 우려하지만 논의 자체는 나쁘지 않은 일이다. 갈수록 인구는 줄어들고 군에 대한 신뢰는 바닥인데, 세계 곳곳은 전쟁 또는 재무장 중이다. 새로운 위기에 대응하려면 기존 재래식 병력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강력한 비대칭 전력에 의지해야 한다. 당장 핵무기를 만들기 어렵다면, 1년 안에 핵무기를 발사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그것도 당장은 어렵다면, 적어도 사회 전반적으로 진지하게 핵무장을 논의해서, 우리 안보 위협에 신경쓰지 않으면 극동에 핵 도미노가 일어날 것이라는 신호를 서방 동맹국들에 보내야 한다. 분명 핵무기는 위험하지만, 나라를 잃는 것보다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꿈을 잃는 것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