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학의 순간들_ 치유와 증언의 글쓰기로 일군 문학의 대평원(박완서 선생을 추모하며)

박선욱 · 시, 동화, 소설 및 평전을 씁니다.
2023/03/15
우리 문학의 순간들_ 치유와 증언의 글쓰기로 일군 문학의 대평원(박완서 선생을 추모하며)
   
   
글 박선욱
   
   
2011년 1월 25일 아침, 담낭암으로 타계한 고(故) 박완서 가족장이 구리시 토평동 성당에서 조촐하게 치러졌다. 앞서 강남 일원동 삼성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식이 열렸을 때도 문인들의 조사나 추모사 등의 낭독 절차는 없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기 싫다는 게 작가의 소박한 뜻이었다. 장례식장 입구에는 ‘부의금은 정중히 사양합니다’란 글귀가 적혀 있었다. 평소 후배 문인들의 호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음을 고려한 작가의 배려였다.
이날 천주교식 가족장에는 작가인 큰딸 호원숙을 비롯한 유가족과 성직자, 고인과 평소 교분이 깊던 문인들이 참례했다. 시인 정호승이 조시를 낭독했다.
   
일찍이 이 시대의 ‘나목’이 되어
문학의 언어로 위안과 행복의 열매를 나누어 주셨는데
이제 또 어디 가서 한 그루 ‘나목’으로 서 계시려고 하십니까?
- 〈선생님 ‘나목’으로 서 계시지 말고 돌아오소서〉 중에서
   
담담하면서도 절절한 시 구절이 그 자리에 참석한 5백여 조문객의 가슴속으로 스며들었다. 장례 미사가 끝난 뒤, 향년 80세를 일기로 세상과 작별한 박완서는 경기도 용인의 천주교 공원묘지에 묻혔다. 스물세 해 전 세상을 떠난 남편과 아들 곁으로 돌아간 것을 위로해주는 듯, 하늘에서는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영하 20도의 혹한이었지만, 눈송이는 마치 작가의 마지막 가는 길에 뿌려지는 꽃송이 같았다.
박완서에게 쏟아지는 경의와 애도는 깊고도 깊었다. “한국 문학사의 맥락과 연대표를 갱신하는 업적을 이룬”(문학평론가 이경호) “한국문학의 빛나는 성좌, 문단의 거목(居木)”에 대한 추앙과 숭모였다. 갑작스러운 부음을 접한 22일부터 영결식이 있기까지 온 나라는 내내 숙연했다.
생전에 동료 작가들의 끊임없는 부러움과 찬탄의 대상이었던 박완서는 1931년 경기도 개풍군 청교면 묵송리 박적골에서 태어났다.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읜 박완서는 유난히 자존심이 세고 교육열이 높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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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실천문학》 으로 등단. 시집 《회색빛 베어지다》 《눈물의 깊이》 《풍찬노숙》, 인물이야기 《윤이상》 《김득신》 《백석》 《백동수》 《황병기》 《나는 윤이상이다》 《나는 강감찬이다》 등. 《윤이상 평전: 거장의 귀환》으로 제3회 롯데출판문화대상 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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