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한 도전

박순우(박현안)
박순우(박현안) · 쓰는 사람
2023/02/16
  한창 여행을 자주 다닐 때는 가기 전 짐을 싸는 건 일도 아니라 생각했다. 머릿속에 준비물이 콕콕 박혀있어 생각난대로 후다닥 가방에 쓸어넣으면 준비는 끝. 일본이나 동남아처럼 비교적 가까운 나라로의 여행일수록 마음은 마치 옆동네 가는 듯 가벼웠다. 없으면 사면 되고 모르면 물으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은 혼자 다니던 여행과는 너무나 다른 세계였다. 코로나 오기 직전 가족이 다함께 육지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아이들은 당시 고작 세 살, 다섯 살이었다. 숙소는 미리미리 예약이 필수였고 웬만하면 온돌방을 잡아야 했다. 한국 음식은 매운맛이 기본값인지라, 음식점에 갈 때마다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는지 없는지를 먼저 찾아야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행을 가서도 휴대폰을 들고 자꾸 검색을 해야 했다. 여행지에서 휴대폰에 시선을 두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런 나와 남편의 모습이 보일수록 무엇을 위한 여행인가 싶어 마음이 무거웠다. 그 후로 가족끼리 제대로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명절에 시댁을, 가끔 친정을, 어쩌다 섬 반대편을 향할 뿐, 코로나라는 전대미문 바이러스에 아이들을 데리고 타지로의 여행을 꿈꾸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남편도 없이 아이 둘을 데리고 바다 건너 여행을 떠났다. 이제 열여덟이 된 조카도 함께. 어른 하나에 미성년자만 셋이라니. 생각할수록 무모한 도전 같다. 중간에 합류하려던 남편은 회사일로 아예 빠지게 됐고, 조카는 너무나 무기력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기에 같이 가자고 내가 먼저 제안했다. 대체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조카가 우리 아이들 만할 때, 나는 한창 여행에 미쳐있었다. 그때 조카가 내게 쓴 크리스마스 카드를 언니가 사진으로 찍어 보내왔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모는 지금 대체 어디를 다니고 있는 거예요?”
마치 조카의 음성이 지원되는 느낌의 문장에 피식 웃었던 기억이 난다. 뇌리에 콕 박힌 문장. 조카는 그 뒤로 나중에 크면 자신도 이모처럼 여행을 많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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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씁니다.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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