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지 국수집 할머니를 추억하며

김형민
김형민 인증된 계정 · 역사 이야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
2023/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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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정권이 출범한 며칠 뒤 윤석열 대통령이 삼각지의 국수집 ‘옛집’을 찾았다는 뉴스가 떴다. 누구는 대통령 된 뒤 첫 ‘외식’이라고도 했다. 모르긴 해도 첫 ‘회식’은 아니었을 것 같지만. 어쨌든 대통령이 찾은 집과 관련된 스토리가 기사마다 줄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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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언젠가 허름한 노숙자가 이 집에 와서 국수를 얻어먹다가 돈이 없어 그냥 튀었는데 할머니가 나와 고래고래 지른 소리가 “뛰지마 그냥 가 다쳐”였다. 불량한 무전취식꾼의 뒤통수에 대고 그렇게 부르짖었던 할머니의 마음에 뒤늦게 귀가 꿰뚫린 노숙자는 목놓아 울었고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고 결심하고 심기일전 한국을 떠나 파라과이로 이민을 갔다. 거기서 나름의 성공시대를 일군 뒤 들어왔는데 우연찮게 방송에서 소개되는 할머니의 모습을 봤다. 그래서 그 사연을 담당 PD에게 편지를 보냈고 그게 신문에 소개됐다는 게 각 언론에 실린 스토리였다. 
갑자기 거의 모든 신문과 방송의 꼭지와 코너를 장식한 사연에 등장하는 ‘PD’는 황망하게도 나였다. 2000년에서 2001년 넘어가던 겨울 <리얼코리아>를 연출하고 있던 6년차 PD였던 내 레이더망에 윤석열 대통령도 찾았던 ‘옛집’이 걸렸고 방송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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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방문 이후 나왔던 모든 기사에서 왕년의 노숙자는 IMF의 유탄을 맞은 사람이고, PD에게 편지를 보내 사연을 소개했다고 돼 있지만 모두 아니다. 그는 ‘노숙자’라는 말이 생기기도 전, 하던 일 탈탈 털어먹고 용산역 앞에서 빌어먹던 ‘부랑자’였다.  그리고 편지가 아니라 전화가 왔다. 방송 이튿날  팀방 전화가 울려서 받았다. 한 40대 정도의 남자 목소리였다. 기계적으로 삼각지 국수집 옛집의 전화번호를 읊어 주었는데 이 아저씨는 용건이 달랐다. “저기 거기 갔다 오신 PD님과 좀 통화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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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한 뒤에 촬영 당사자가 아닌 이가 PD를 찾을 때 그 용건은 유쾌하지 않을 때가 많다. 원치 않게 내 모습이 나왔다든지, 라이벌 식당 주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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