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 배터리는 영혼의 필수품

이건해
이건해 · 작가, 일본어번역가. 돈과 일을 구함
2023/02/13
신세대의 줄임말 맞추기 퀴즈에서 보조 배터리를 ‘보배’라고 줄여 부른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름대로 위트 있는 줄임말이다. ‘보조 배터리’라는 단어가 좀 길기도 하고. 하지만 ‘보배 좀 빌려줄래?’하고 줄여서 부를 엄두는 나지 않는다. 보조 배터리가 아무리 중요한 물건이라 할지라도 유난스럽다는 느낌도 들고, 유행 다 지난 사어를 뒤늦게 쓰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영어로는 파워 뱅크라고 하고 일어로는 모바일 배터리라고 부른다는데, 나는 보조적인 수단임을 강조하는 ‘보조 배터리’라는 명칭이 가장 마음에 드니까 이대로 부르려 한다. 보조 배터리야, 안녕?

한국에서 보조 배터리가 대중화된 것은 아이폰이 국내에 출시된 이후부터일 것이다. 안드로이드 진영은 분리형 배터리를 교체할 수 있었던 데 비해 아이폰은 그게 불가능해서 전력 공급용 외장 배터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스마트폰 등장 전인 2005년 겨울부터 PDA를 썼던지라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보조 배터리를 갖고 다녔다. PDA도 대체로 배터리가 분리되긴 하지만, 내가 처음 산 모델은 저가형이라 배터리 일체형이었던 탓이다.

그래도 그렇게 외장 배터리를 연결한 PDA를 적외선 통신 방식 무선 키보드와 안테나로 연결해서 글을 쓰고 있자면 오래된 007영화의 소품처럼 레트로한 첨단 기기의 멋이 좀 나는 편이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그건 얼마쯤 하냐고 물어본 적도 있는데, 태블릿과 블루투스 키보드가 보편화된 요즘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으로 시답잖은 한편으로 17년이나 지났는데도 보조 배터리만은 모양새가 똑같으니 배터리 기술의 발전이 더디긴 더디구나 싶다.

보조 배터리는 기기를 충전하는 것 말고 딱히 다른 기능을 하지 않기에 교체 주기가 상당히 긴 편이고, 나는 지금까지 일곱 개의 보조 배터리를 사용해왔다. 처음 장만한 게 PDA시절에 쓰던 2500mAh 정도의 모델, 그다음이 5000정도 되는 것이었다. 둘다 기성 18650셀이 들어간 것으로 한 개냐 두 개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는데, 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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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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