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 비건] 주짓떼라 채식을 선택하다

양민영
양민영 · 작가
2024/03/29


매트는 노화를 체감하기 좋은 장소다. 절망의 탄로, 젊음을 향한 질투, 노화에 관한 저주가 끊이지 않는다. ‘아, 너무 늙었네, 10년만 젊었어도!’, ‘젊어서 좋겠다’, ‘너도 늙는다’ 등. 몸이 예전만 못한 걸 나이 탓으로 돌리고 체력이 고갈되면 단백질, 정확히는 고기를 떠올렸다. 고기는 힘과 스태미나의 상징이니까.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고기를 양껏 먹는 것이야말로 젊음의 특권이다. 힘을 얻고자 고기를 먹는데 고기를 소화할 힘이 없다는 슬픈 사실! ‘더부룩하다’는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는 알아도 좀처럼 체감하지 못했던 나는 어느 날 무엇을, 얼마나 먹어야 할지 모르는 당혹감에 직면했다. 이렇게 인생의 전반전을 살던 방식대로 계속 사는 게 옳은 걸까? 고기가 힘을 준다는 신념도 세월 앞에서 흔들렸다.

그 무렵 내 욕망과 무의식의 밑바닥까지 들여다보는 넷플릭스의 알고리즘이 내가 즐겨본 영상과 관심사를 조합해서 ‘더 게임체인저스’라는 다큐멘터리를 추천했다. 도입부에 유에프시(UFC)의 전설 코너 맥그리거와 채식 격투가인 네이트 디아즈가 등장했다. “나는 사자, 너는 가젤”이라며 유치하게 상대를 조롱하던 맥그리거는 보기 좋게 패하고 만다.

맥그리거 외에도 영화에 등장하는 이들은 대부분 운동선수다. 저마다의 사연과 함께 채식이 인체와 운동 능력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이들도 평생 고기를 맹신했다. 그러나 운동 성과를 높이고 노화를 늦추기 위해서 과감하게 채식을 선택했다. 보디빌더이자 배우인 아널드 슈워제네거도 등장하는데 그는 70살 무렵에야 채식주의자가 됐지만 채식으로 체내 콜레스테롤 수치를 평생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뜨렸다고 말한다.

영화가 끝날 무렵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부터 당장 내 몸에 주입하는 연료를 바꿔보기로 했다. 채식이 몸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궁금했고 주짓수를 더 잘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있었다. 한 달간 고기·생선·우유·달걀 등 동물성 단백질을 끊는 생체 실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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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비건, 초보 복서이고 본업은 작가입니다. 페미니즘 에세이 '운동하는 여자'를 썼고 한겨레 주말 ESC, 오마이뉴스, 여성신문에 페미니즘과 운동에 관한 글을 연재합니다. 여성 문제에 관심이 많고 생동감 있는 삶을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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