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아름다운 운동화를 죽게 놔둘 순 없지

이건해
이건해 · 작가, 일본어번역가. 돈과 일을 구함
2023/06/21
나는 신발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물론 신고 걸을 수만 있다면 거지 발싸개 같은 것이라도 주워 신고 다닐 정도로 무감각한 수준은 아니고, 나름대로 신발에 대한 미의식은 있었다. 그런데 이 미의식이라는 게 가죽 제품만 높이 쳐주는 경향이 강해서, 운동화야 뭐 이걸 신든 저걸 신든 대동소이 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말하니 가죽 신발을 아주 잘 관리해서 십 년씩 신었을 것 같군. 하지만 정작 가죽 관리에는 소홀했고, 기껏해야 가죽 크림이나 일 년에 한 번 바를까 말까 한 수준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동안 서너 켤레나 되는 가죽 신발을 해질 때까지 신어서 죽여버리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무식하고 아까운 짓이다. 마음에도 들고 발에도 잘 맞는 신발은 찾기 어렵다는 걸, 매일매일 새로운 행복을 찾을 수 있었던 시절에는 전혀 몰랐던 것이다. 그렇게 방탕한 생활을 지속하던 나는 요 몇 년 사이에 손대는 일마다 실패해서 재정난을 겪는 것도 모자라 신발 구매에도 호된 실패를 겪으며 있는 신발을 잘 관리하는 게 최고의 미덕임을 깨닫게 되었는데…… 이에 관련된 얘기는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자.

그런데 신발을 아끼고 잘 관리해야 한다는 인식과 미의식은 전혀 별개의 분야인 탓에, 나는 가죽 신발을 나름대로 아껴 신으면서도 운동화는 편한 신발을 신어야 할 때 어쩔 수 없이 신는 신발 정도로 여겼다. 기억하는 한 내가 아름다운 운동화를 신어본 적은 한 번도 없으니, 어쩌면 그건 깊고 깊은 무의식에 단단히 뿌리내린 인식일지도 모르겠다. 아마 얼마전 그 사건을 겪지 않았더라면 앞으로도 영원히 운동화 따위는 기피 대상으로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삶의 변화는 종종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찾아온다.

2023년 4월 어느날, 장을 보러 우산을 쓰고 집을 나선 나는 아파트 단지를 걷던 와중에 폐의류 수거함 위에서 굉장히 시선을 끄는 물체를 발견했다. 비에 젖은 채 백색 바탕에 진한 청색과 빨간색으로 빛나는 그 물체……. 그것은 다름아닌 나이키 운동화였다. 믿기 어려운 광경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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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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