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효란 누구인가 - 19세기말 판소리의 재탄생과 신재효의 역할(1)

칭징저
칭징저 · 서평가, 책 읽는 사람
2023/05/02
신재효(우리문화신문)
 
판소리 창자의 목소리는 매우 풍부하고 독특해 그 소리의 강력한 존재감으로 판소리 공연을 주도하기도 하지만  그 소리는 어떤 보이지 않는 역사나 전통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판소리의 미학과 이론을 규정했던 신재효의 영향은 크다고 할 수 있다.  신재효는  판소리의 모든 측면을 발전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판소리사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여성 창자를 공식 도입함으로써 판소리의 “소리”에 변화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판소리 작품의 개작을 통해서 판소리 예술의 지위를 승격시킴으로써 “판”을 바꾸었다.   

이번 글에서는 판소리 전통에 있어서 신재효의 역할 또는 그의 영향력을 평가하고자 한다. 신재효는 자신이 직접 창자가 되지는 않았지만 판소리 사설의 글이나 문장뿐만 아니라, 판소리의 소리나 “목소리/음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신재효의 두 가지 역할, 즉 판소리 사설을 선택하고 자신의 문체로 기록, 보존했던 작가로서의 역할과 여성 창자 개발자로서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었다.
 
신재효는 누구인가?
 
신재효는 1812년에 태어나 1884년에 사망했다.  그의 부친 신광흡은 원래 서울 출신이었지만, 전라도 고창의 향리로 임명되었는데 고창에서 관약방 운영도 하여 많은 재산을 모았다.  재산이 많았지만 부친이 하급 관리였기 때문에 신재효의 가족은 여전히 중인 계층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신동으로 불렸으며 부친의 재산으로 우수한 교육을 받았지만 신분의 한계로 인해서 중인계급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부친처럼 신재효도 후에 고창의 향리가 되는데 자신의 신분 때문에 사회적인 한계를 겪게 되고 자존감에도 큰 심리적인 영향을 받게 되었다.   신재효는 아무리 국민들을 가난에서 구제하고 경복궁 건립을 위해 기부를 하는 등 평생 신분적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어도 양반 신분에 이를 수 없었다. 

신재효가 향리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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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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