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내가 내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루시아
루시아 · 전자책 <나를 살게 하는> 출간
2024/05/11
이미지 출처. freepik

딸아이의 소풍날이다.
나 어릴 적 소풍이라 하면 뒷산 어디메쯤 올라가 실실 돌아다니며 보물찾기 좀 하다가 뽐내듯 장기자랑 좀 하고 반끼리 모여 수건 돌리기 좀 하다가 삼삼오오 모여 엄마가 싸준 도시락 까먹고 자유시간 좀 갖다가 또 모여 놀다가 해산했던 지라 산에는 식당이 있을 리 없으니 당연히 집에서 도시락을 챙겨가야 하는 거였다만 초등학생도 아닌 중학생이 된 아이의 소풍 도시락이 웬 말이냐.


전국적으로 학교 점심은 이제 모두 학교 급식으로 해결하고 나 같은 경우는 센터에서 저녁밥까지 아이들 손에 도시락을 쥐어 주니 나는야 그야말로 니나노 늴리리야 날라리 엄마일 뿐인데 갑작스러운 소풍 도시락, 그것도 재료 손질부터 머리가 지끈거리는 김밥을 쌀 생각에 며칠 전부터 초초초긴장 상태를 유지 중이었다. 게다가 낮밤이 바뀌어 밤늦게 잠들면 아침에 아이들이 먼저 기상하고 흔들어 깨워야 눈을 겨우 뜨는 불량 엄마인데 소풍 당일이라 해서 불량이 정품으로 바뀌겠느냐 말이지. 


딸아이에게 소풍 도시락에 대해 슬쩍 운을 뗐더니 집김밥보다 산 김밥이 더 맛있다며 김밥을 사서 가져가면 안 되느냐고 말한다. 정말 밖에서 산 김밥이 맛있어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늦잠꾸러기 엄마가 고생할 걸 알고 일부러 밖의 음식으로 가져가겠다고 하는 건지 통 분간이 안 간다. 아직도 한참 어린애 같다가도 또 어떨 땐 한 없이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딸아이라 하얀 거짓말 같으니, 속엣말만 정확히 얘기해 주면 참 좋겠다만 뱃속에 열 달을 품고 있었어도 딸의 속내는 참 알 수가 없다. 아침 댓바람부터 어느 김밥집이 문을 열겠니 일축하며 행여 편의점에서 김밥을 판다 하더라도 매일 싸는 도시락도 아니고 1년에 한 번 싸는 소풍 도시락인데 하는 마음에 죽으나 사나 김밥을 말아야겠구나 싶었다. 


소풍 바로 전날 김밥 재료를 사다 놓긴 했다만 얼레벌레 시간을 보내고 나니 역시나 시계는 새벽 3시를 가리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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