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드라마와 히스테리아 - 상허 이태준의 소설
멜로드라마와 히스테리아 - 이태준, 「법은 그렇지만」과 「구원의 여상」
히스테리는 욕망이 궁극적으로 충족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주체의 괴로움에서 비롯한다. 순애보,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행위는 따라서 다분히 히스테릭하다. 「법은 그렇지만」과 「구원의 여상」에서는 각각 순애보를 보여주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한 명(경남)은 어린 시절을 함께한 동무-연인(서운)이 겪은 불우한 생애에 대한 동정이요, 다른 하나(인애)는 ‘구원받은’ 이가 구원자(영조)를 향한 순교자적 투신이다.
이 희생-사랑은 연쇄하는 서사를 통해 독자의 파토스를 고조시키고, 감정이입-연민의 상태를 극대화한다. 그런데 파토스를 고조시킬 수 있는 동력. 서사를 추동해 나가는 힘은 바로 ‘정조’의 유무(보위)에서 비롯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영조가 ‘음모’를 알아채고 동정을 살피다 해결한 인애의 ‘순결’ 위기, 남가와 우경의 관계 요구에 계속 노출되는 서운의 모습은 서사의 긴장이 여성인물들의 ‘정조’ 여부와 관련된다는 점을 명징하게 드러낸다. 그렇다면 서운의 경우, 우경과 관계를 맺고 난 이후의 「법은 그렇지만」은 어떤 힘에 의해서 움직이는가?
답변에 앞서, 「법은 그렇지만」과 「구원의 여상」에서의 결말을 각각 살펴보자. 「법은 그렇지만」은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지었다고 자백한 경남의 사랑에 감동받은 ‘법권력’이 범인 서운에게 선처를 베푸는 결말이다. 「구원의 여상」은 명도가 동경에서 돌아오고, 죽은 인애의 반지를 발견한다는 데서 끝난다. 영조가 예전에 사랑의 표시로 준 반지는, 끝내 ‘보답’받지도 못하고 명도가 이후에 ‘알아채지도’ 못한, 인애의 사랑을 상징하는 것이다.
두 작품의 결말을 들여다보면 ‘서운-경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