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살 연하에게 반한 것보다 더 비참한 것은 -연재소설 '황혼의 불시착' 3회

오진영
오진영 · 작가, 칼럼니스트, 번역가
2023/09/30
남자는 여자보다 열 네 살이 어렸다.
여자는 66년생이고 남자는 80년생이었다.
앞자리 숫자가 두 개 차이였다.
여자가 여기 쓴 이야기를 어느 가까운 친구에게 털어놓은 끝에 나이 얘기를 했다고 상상해보자.
아마 친구는,
"미친년아. 그 얘기를 진작 했어야지. 
유리상자 속 인형이 어쩌구,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 모든 것을 할 수 있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지말고!"
라며 허파가 끊어지도록 웃을 것이었다.

나이 앞자리 숫자가 두 개 젊은 남자를 여자가 다시 만난 건 사람들이 많이 온 어느 행사였다.
여자와 마주친 남자는 원로를 대하듯 고개를 깊이 숙이고 깍듯이 인사했다. 
여자는 아유, 반가워요, 잘 지내셨죠! 젊은 남자 앞에서 나이 많은 여자가 떨법한 너스레를 기계적으로 읊었다. 
평소 같았으면 언제 끝나나, 지루해하다 중간에 적당히 빠져나갈 궁리만 했을 여자는
이 날은 한 공간 안에 남자가 있는 이 자리가 영원히 이어지길 바라며 끝까지...
오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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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와 오진영tv 유튜브로 시사 평론을 쓰는 칼럼니스트. 포르투갈어권 문학 번역가.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 파울로 코엘료의 <알레프> 등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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