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통신 2-다양한 사람들을 구경하는 즐거움

박산호
박산호 인증된 계정 · 번역가, 에세이스트, 소설가
2023/08/08

   
   
두바이 공항 환승장에 있는 긴 플라스틱 벤치에 누워 한 시간 동안 꿀맛 같은 단잠을 자고 일어났다. 유럽 여행을 떠나면 무시무시하게 유능한 소매치기들의 마수를 조심하라던 무수한 경고도 떠올리지 못한 채 어쩜 그렇게 생전 처음 보는 타인들 속에서 곯아떨어질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눈을 뜨자 맞은 편에서 불그스름한 금발을 레게 스타일로 비비 꼬아 놓은 한 백인 청년이 누가 업어가도 모르게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그래, 총각. 피곤 앞에 장사 없지.


본인 사진-두바이 공항 환승장
   
   
스트레칭도 할 겸 노트북이 든 배낭을 짊어지고 공항 안을 어정어정 걸어 다니며 구경하다가 입이 심심하기도 하고 살짝 허기가 밀려오기도 하고 해서(기내에서 그렇게 먹고도...)두바이 공항에선 어떤 음식을 파나 궁금해서 여러 식당을 돌아다니다 한 곳을 택했다. 커피와 왠지 중동스러워보이는 빵을 시도해보려고 여러 번 용기를 냈으나 결국 실패하고 평소 먹던 초콜릿 빵을 선택했다(아아, 소심한 자의 이름은 박산호.)
   
본인 사진
   
   
공항 안의 여러 식당은 새벽 5시에도 여러 복장과 피부색과 국적의 사람들로 가득 차서 시끌시끌했다. 내가 배낭을 두고 커피와 빵을 받으러 간 자리는 2인용 테이블 세 개를 길게 1자로 붙여 놓은 곳이었다. 거기서 맨 끄트머리에 있는 테이블에 가방을 뒀는데. 돌아와 보니 한 아랍계 부부와 한 아이가 나와 맞은 편 자리에 일렬로 앉아 있었다. 
   
   
   
응? 가족이면 테이블 두 개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앉으면 되지 않나? 왜 굳이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를 가운데 끼고 따로 앉아 있지? 라고 생각하며 슬쩍 부부를 본 순간 깨달음이 밀려왔다. 히잡을 쓰고 앉은 부인은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었고, 나와 마주 보고 앉은 중년 남자는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박산호
박산호 님이 만드는
차별화된 콘텐츠, 지금 바로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우리 사회의 좀 특별한 전문가들을 만나 그들의 일, 철학,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인터뷰 시리즈. 한 권의 책이자 하나의 우주와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곳에서 전하겠습니다.
25
팔로워 599
팔로잉 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