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청소년 평전 『채광석-사랑은 어느 구비에서』(박선욱 지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5년 12월 20일 출간)

박선욱 · 시, 동화, 소설 및 평전을 씁니다.
2023/04/23
청소년 평전 『채광석-사랑은 어느 구비에서』(박선욱 지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5년 12월 20일 출간)-프롤로그
   
   
프롤로그
   
   
   
새벽에 스러진 별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1987년 7월 12일 아침 6시, 다급한 전화벨 소리가 한밤의 공기를 가르고 울려 퍼졌다.
“이 시간에 웬 전화지?”
강정숙은 졸린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벽시계의 작은 바늘이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여보세요. 여기 남현동인데요?”
“수왕 엄마예요? 저, 김순진이에요. 채광석 선생님이……. 방금…….”
다급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풀빛출판사 나병식 사장의 부인 김순진이었다. 평소 차분한 그녀답지 않게 김순진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고, 말을 채 잇지 못했다. 새벽 6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전화를 하는 걸로 보아, 무슨 나쁜 일이라도 생긴 모양이었다.
“무슨 일이세요? 우리 수왕 아빠가 어디 다치기라도 했나요?”
“그게 아니고, 저어……. 오늘 새벽에……돌아가셨어요.”
김순진이 어렵게 뱉은 말끝에 한숨이 묻어났다. 강정숙은 갑자기 말문이 막힌 듯, 잠시 동안의 침묵이 이어졌다.
“뭐라구요?”
“애오개 근처에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요. 신촌 세브란스병원 영안실에 시신을 안치했다고 김진경 시인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듣고 있어요?”
“……예. 말씀하세요.”
“지금 빨리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우리 힘찬이 아빠하고 저도 곧 세브란스로 갈 거예요.”
강정숙은 간신히 대답을 했으나 갑자기 맥이 탁 풀려 땅 밑으로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아침에 웃는 얼굴로 문 밖을 나선 사람이 갑자기 교통사고라니, 날벼락이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1980년 5월에 끌려가서 모진 고문을 받았을 때도 죽지 않고 살았던 그이였는데, 병원 영안실에 누워 있다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수왕이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올해 나이 여덟 살. 이제 겨우 초등학교에 입학한 1학년생 외아들이었다. 잠든 아이를 억지로 깨운 강정숙은 택시를 타고 세브란스로 곧장 달려갔다.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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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실천문학》 으로 등단. 시집 《회색빛 베어지다》 《눈물의 깊이》 《풍찬노숙》, 인물이야기 《윤이상》 《김득신》 《백석》 《백동수》 《황병기》 《나는 윤이상이다》 《나는 강감찬이다》 등. 《윤이상 평전: 거장의 귀환》으로 제3회 롯데출판문화대상 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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