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 속 문장 10 – 소리의 종착지는 침묵일까?
2023/08/29
몸므가 대답했다. “어떤 나이가 되면, 인간은 삶이 아닌 시간과 대면하네. 삶이 영위되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지. 삶을 산 채로 집어삼키는 시간만 보이는 걸세. 그러면 가슴이 저리지. 우리는 나무토막들에 매달려 이 세상 구석구석에서 고통을 느끼며 피 흘리는 광경을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하지만 그 속에 떨어지지는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네.”
- 『로마의 테라스』, 파스칼 키냐르, 송의경 역, 문학과지성사, 2002, 128쪽. 불을 지피고, 구들을 덥히기 위해서 한 가계家系의 검은 입일지도 모르는 아궁이에 처음 넣은 것은 갈색으로 변한 솔잎이었다. 말랐다고 생각했던 솔잎은 지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타들어갔다. 갈색은 마른 것의 색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그 속에는 고체가 아닌 것들이 들어있었다. 솔잎에 들어있는 것이 온통 고체라면 그런 소리는 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 푸른빛을 덜어내지 않은 솔잎은 더 큰 소리를 낸다. 가지치기를 한 싱싱한 푸른 솔...
@소다
파스칼 키냐르의 문장을 참 좋아하는데, 흥미 있는 것은 미술가와 음악가를 다루고 있는 점이에요. 미술과 음악이 시각과 청각이라는 다른 감각의 이야기인데, 결국 예술 안에서는 같다는 얘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시간의 연장은 좀 다르게 봐야 할 것 같아요. 미술과 음악이 갖는 시간의 개념이 다르듯이요. 소리와 침묵의 경계도 그렇고요. ^^
고맙습니다!!
@뉴비
'보편'이라는 게 참 규정이 어려워요. 최근 <문화적 정체성은 없다>라는 책을 대충 살폈는데, 보편이라는 게 주장하는 이의 규정 안에 있는 것이거든요. 그걸 달리 생각해보면 딱 '개별'이에요. 그것만으로도 결국은 한몸이 되는 셈이죠. ^^
고맙습니다!!
이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정말 대단한 명작 훌륭한 문장이네요. 해설 또한 늘 꼭꼭 씹어 넣어주시니 어려운 문장들도 이해하기 쉬워요. 지금 제 나이가 그런 듯 합니다.삶이 아닌 시간과 대면하는거 같아요. 삶은 시간 싸움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시간의 연장이 삶의 연장은 아닌것 같아요. 소리의 끝이 침묵이죠.삶의 끝도 침묵이듯이.. 읽어보고 싶은 책입니다.
@천세진 보편성과 개별성은 서로 상충되는 것 같지만 파동과 입자처럼 한 몸이란 생각이 듭니다. 개인의 죽음은 개별성의 종말이고 침묵하는 것이지만 보편성의 입장에서 그것은 커다란 지속의 작은 변화일 뿐 더 이상의 의미는 없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작가님이 말씀하시는 누적의 존재처럼...
@뉴비
저는 종종 책을 읽는 일은 “죽은 이들과의 대화”라는 말을 하고는 합니다. 책은 이미 지나간 공간, 시간, 사람, 사물만이 등장하거든요. 미래를 이야기하는 책들도 있지만, 결국 지나간 것들을 미래에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어서 아주 새로운 것일 수 없다는 생각이지요.
이미 있어온 것들 속에서의 삶이기 때문에 인간은 어느 문화권에서 성장했든 통할 수밖에 없지요. 통할 수 없는 아주 생경한 것들은 그걸 알릴 언어가 탄생하지 않아서, 글로 남아 있지 않고요.
결국 인간은 누적의 존재인 셈이지요. 다만, 그 주인공이 바로 나이기 때문에 통하는 것들, 낡은 것들이 ‘나’의 눈앞에서는 언제나 새로울 수밖에 없지요. ‘나’는 변주하는 존재지요. 끌로드 레비 스트로스가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을 서로 다른 ‘문화인종’으로 본 것도 그 때문이고요.
제 생각은 이런데 도움이 되려나 모르겠습니다. ^^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다시 읽고 있습니다. 죽음에 직면한 이반 일리치도 시간을 보았지요. 요즘 읽고 있는 책이라 작가님 글을 보는데 이 책이 떠올랐습니다. 인간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그것이 어느 차원에서든 서로 통하는 걸까요?
@최서우
거장들의 명작 속 문장들을 문학적으로 변주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는데 맛있게 음미해주시니 글을 쓰고 소개하는 보람을 느낍니다.^^ 고맙습니다!
명작 속 문장 의 좋은 글들을 읽고있나라면 접시에 놓여진 음식들중 가장 좋아하는것만 골라서 먹는듯한 느낌입니다. 좋아하는 글 을 오물오물 씹으면 머리속에서 맛있다고 뇌가 출렁입니다.
@악담
손창섭 선생님의 작품을 찾아 읽어보겠습니다.
저도 손탁, 굴드 , 바르트, 특히 수전 손탁을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작가들이 많아서, 소설과 비소설(인문사회과학) 쪽으로 나누어 놓고 있습니다.^^
의외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손창섭 작가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50년대 혜성처럼 등장하셨다가 어느 날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셨는데 나중에 일본에 있으셨더군요. 이 분이 한국 문단과는 상종을 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예 한국을 떠나셨다고 보는 분들이 많더군요. 그의 소설을 찾아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로는 수잔 손탁, 조지 오웰, 제임스 제이 굴드, 김수영, 롤랑 바르트, < 집중과 영혼 > 의 김영민 등등이 있습니다. 워낙 많아서요..ㅎㅎㅎ
명작 속 문장 의 좋은 글들을 읽고있나라면 접시에 놓여진 음식들중 가장 좋아하는것만 골라서 먹는듯한 느낌입니다. 좋아하는 글 을 오물오물 씹으면 머리속에서 맛있다고 뇌가 출렁입니다.
의외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손창섭 작가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50년대 혜성처럼 등장하셨다가 어느 날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셨는데 나중에 일본에 있으셨더군요. 이 분이 한국 문단과는 상종을 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예 한국을 떠나셨다고 보는 분들이 많더군요. 그의 소설을 찾아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로는 수잔 손탁, 조지 오웰, 제임스 제이 굴드, 김수영, 롤랑 바르트, < 집중과 영혼 > 의 김영민 등등이 있습니다. 워낙 많아서요..ㅎㅎㅎ
파스칼 키냐르의 문장은 방대한 지식과 교양을 최대한 압축했을 때 나오는 것 같습니다. 공포와 섹스라는 작품만 봐도 와, 이 양반 지식의 스펙트럼이 무궁무진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더군요. 저도 존 버거와 주제 사라마구는 사람들에게 자주 추천하는 작품입니다.
이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정말 대단한 명작 훌륭한 문장이네요. 해설 또한 늘 꼭꼭 씹어 넣어주시니 어려운 문장들도 이해하기 쉬워요. 지금 제 나이가 그런 듯 합니다.삶이 아닌 시간과 대면하는거 같아요. 삶은 시간 싸움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시간의 연장이 삶의 연장은 아닌것 같아요. 소리의 끝이 침묵이죠.삶의 끝도 침묵이듯이.. 읽어보고 싶은 책입니다.
@천세진 보편성과 개별성은 서로 상충되는 것 같지만 파동과 입자처럼 한 몸이란 생각이 듭니다. 개인의 죽음은 개별성의 종말이고 침묵하는 것이지만 보편성의 입장에서 그것은 커다란 지속의 작은 변화일 뿐 더 이상의 의미는 없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작가님이 말씀하시는 누적의 존재처럼...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다시 읽고 있습니다. 죽음에 직면한 이반 일리치도 시간을 보았지요. 요즘 읽고 있는 책이라 작가님 글을 보는데 이 책이 떠올랐습니다. 인간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그것이 어느 차원에서든 서로 통하는 걸까요?
@악담
손창섭 선생님의 작품을 찾아 읽어보겠습니다.
저도 손탁, 굴드 , 바르트, 특히 수전 손탁을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작가들이 많아서, 소설과 비소설(인문사회과학) 쪽으로 나누어 놓고 있습니다.^^
@악담
저도 번역 출판된 파스칼 키냐르의 책은 거의 다 읽은 것 같습니다. 키냐르의 문장들이 너무 좋아서 주변 사람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가장 많이 소개 합니다. 이탈로 칼비노, 실비 제르맹, 살만 루슈디, 이스마엘 카다레, 마이클 온다치, 존 버거, 주제 사라마구도 추천하는데, 문장은 역시 파스칼 키냐르인 것 같습니다. ^^
파스칼 키냐르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이분 책은 거의 다 읽은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