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웨이브] 첫번째 물결,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성 정치학의 쟁점들
2024/04/01
무지의 광풍 속에서 살아남기
“공부하는 고통은 잠깐이지만 못 배운 고통은 평생이다” 나는 공부를 젊은 날 이뤄내야 할 성취이자 성공의 척도로 삼는 격언에 반대한다. ‘앎’을 탐구하는 과정은 필히 고통과 상처를 수반한다.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몸들의 역사를 마주하고 소수자의 언어로 세상을 새롭게 인식하는 것은, 혼란과 괴로움의 연속이다. ‘상식’이 모래성처럼 부서질 때의 충격, 나의 천진이 폭력임을 깨달았을 때의 부끄러움, 연대와 존엄을 가르쳐 주지 않은 교육에 대한 분노가 쌓여간다. ‘정상 사회’와 불화하며 우는 날이 많아진다. 그래서 공부는 아름다울 순 있을지언정 기쁠 순 없고, 불행한 삶을 끌어안을 순 있을지언정 행복하진 않다. 잠깐 웃고 오래 슬퍼하며 차갑게 분노하는 일. 이것이 공부다.
여성주의, 탈식민주의, 생태주의, 장애학을 만난 것은 쓸쓸한 축복이었다. 중산층 계층에 편입되려고 발악했던 나는, 어느덧 내 집 마련이 하늘의 별 따기가 되어버린 사회 구조를 질문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정치적 중립’ 뒤에 숨어 비겁함을 합리화했던 과거와 달리,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라고 선언하는 사람으로 변모했다. 서구 백인 이성애자 비장애인 남성의 언어를 남발하며 ‘지당하신 말씀’만 반복했던 날들과 결별하고, ‘인종, 젠더, 계급’을 가로지르며 불온하고 독창적인 언어를 발명했다. 낯선 언어는 획일화된 세계에 도전하는 혁명이자, 나를 구원하는 복음이었다. 공부를 통해 위치성과 당파성을 자각하면서 진화를 거듭한 몸은 주어진 현실과 창조된 현실 사이에서 자주 충돌했다. 부딪히고 다치고 깨질 때마다 다시 태어났고, 앎의 뿌리가 튼튼해질수록 더 많은 몸들과 연결되었다. 그 순간, 고통받는 타인은 더 이상 ‘타자’가 아니었다. 내가 그였고 그가 나였다.
내가 진화를 거듭하는 사이에 세상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아니, 회복 불능 판정을 내려야 할 만큼 망가졌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류는 병들어간다. 자본주의는 무한대로 몸집을 불리며...
@엘리어스 가부장제를 옹호하는 것으로 엘리어스님의 취지를 오해했다고 하시길래, 선의가 있으셨는데 오해당하셨다고 생각하셨구나 싶었습니다. 그렇지 않으셨군요.
저는 제가 말씀드린 바가 UN같이 공신력 있는 기구에 의해서 채택된 주장임에도 합리적이지 않고, 증거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잘 모르겠군요. 자신만의 사고실험에만 기반하여 만들어낸 참신한(하지만,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주장은 증거가 아주 풍부하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시는 이유도 잘 모르겠습니다.
가부장제의 역사가 5000년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가부장제가 농경이 발달한 문화권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농업 생산력이 낮아 농경 이외의 노동력이 추가적으로 필요했던 한반도의 경우에는 성리학적 질서가 들어왔을 때에야 비로소 가부장제가 공고하게 성립되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 이상 길게 써놓으신 논증들에 대해서는 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합니다. 자신만의 생각에 근거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죠. 물론 엘리어스님 이외에도 엘리어스님의 주장에 수긍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이 감정에 기반하는 것인지 아니면 논증에 기반하는 것인지는 다른 문제이겠죠.
가부장제의 역사가 5000년 정도이며, 이것에 대한 개혁의 필요성이 있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으시다는 것은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이외에 자신만의 생각에 기반해서 써내려 가시는 논증에 대해서는 제가 같이 의논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더이상 엘리어스님과 이와 관련하여 논쟁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 같습니다. 엘리어스님도 시간 낭비라고 여기시는 것 같은 발언을 많이 하신 바, 우리의 논의는 여기까지라고 해두죠. 그럼 안녕히 계세요.
@서형우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관계를 맺고 구성원으로 기능하는 것에 대해서, 신기하지는 않은데 다소 이상한 생각을 하실까봐 피곤한데도 하품하면서 덧붙이자면, 예를 들어 여성이 남편에게 <씨*놈>, <혐오한다>, <증오한다> 하면 딱히 사회에서 처벌되지 않습니다만, (여성이 오죽하면 이러겠냐는 접근은 진부해서 볼 이유도 없는 거 같고요) 이런 맥락에서 아무한테나 이렇게 하면 처벌이 되는 그런 걸 인지하는 거다, 이렇게 보시면 되겠습니다.
당연히 남성들은 이런 행동이 처벌되고 있고 (그래도 할 사람은 하는 거고) 여성들에게는 아직 상대적으로 덜 적용되는 부분이 있다는 거죠. 예를 들어 예전에 <욕쟁이 할머니> 식당이라는 게 유행했었는데 이 식당에 가면 식당 주인 할머니가 손님들한테 진짜 쌍욕을 했었고, 그게 그냥 웃기고 그랬던 정서가 있었습니다만, 글쎄요, 앞으로는 힘들지 싶습니다.
지금의 40대 이전 여성들이 고령이 되서 막무가내로 쌍욕을 하는데, 심지어 손님들에게 그렇게 하는데, 사람들이 웃어준다?????? 가능할까요? 지금 초등학생들은 존중 받으며 자라서 오히려 재미있어 할까??????? 그래도 그건 일종의 희화화가 아닐까? 여하튼 지금은 김수미씨 같은 일부 (고령 여성) 연예인들이 하긴 하는데 이게 30년 뒤에도 가능할까 싶고, 그건 김수미씨가 할머니라는 어떤 지위가 있기 때문에 일종의 애정 표현으로도 보이는 걸 텐데, 자식이 없는 여성에게도 그러한 존중이 있을까? 저는 힘들다고 봅니다.
<할머니>라는 테두리가 없는 고령 여성의 욕설과 무례, 무질서에 사회가 계속 무작정 관대하기는 힘들 거라는 거죠. (할머니들이 다 이렇다는 게 아니라 그런 사회적인 문제의 관점에서 언급하는 거니 또 오해하지 마시고요) 또 그 때는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사회의 다수가 돼있을 테니까요.
이거를 여성들이 인지해야 된다는 거죠.
@서형우 아, 그리고 여성들의 지위가 낮다, 제 이 표현도 굳이 자신의 주장을 확고히 하려는 의사에서 다소 곡해를 하시는데, 이미 그러한 지위 낮은 남성들은 (충분히) 사회에서 도태되어 살고 있습니다. 범죄자의 80%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남성이고, 자살자의 70%도 남성이며, 홈리스의 대부분도 남성이고요. 요즘엔 심지어 학급에서 성적도 남성들이 낮은 경향을 보이고 있죠. ^^ 모든 위험하고 끔찍하고 이런 부분에서 다수 혹은 거의 전부를 차지하는 것도 어느 사회나 남성입니다. 범죄자의 90% 가까이가 남성인 나라도 있거든요.
그게 이제 가정이 붕괴되는 지점에서 여성에게 넘어오고 있다는 것이지, 여성만이 지위가 낮다 이런 접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필요해 보입니다. 물론 상대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낮은 면이 있는 것은 부인하지 않겠습니다만, 여성도 앞으로는 가정이 아닌 사회 구성원으로 어떻게 기능할까, 를 고민해야 되는 지점이다, 이렇게 사고가 흐르는 게 나을 겁니다.
앞으로 (고령) 여성이 아이도 없고, 가정도 없고, 사회 관계도 완전 두절된 남성적 위치로 <다수가> 살게 되는 상황은 거의 지금 시대가 처음이기 때문에, 저는 이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이런 거죠. 과거에는 여성이 혼자 늙는 일은 거의 없는 게 실질적으로 경제 활동을 하지 못 하므로, 남편이 없는 경우 아이가 있더라도 반드시 다른 남성과 반강제로라도 재혼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니라면 친정이나 이런 데로 돌아가거나 여하튼 가정이 받아줬는데 지금은 외동이나 거의 이런 식이라, 가정은 실질적으로 약화되어 이 부분은 반대로 더 강화될 가능성이 있는 거고요.
당연히 싫은 사람과 억지로 결혼해서 살면 지옥이겠으나, 이를 거부하여 혼자 아무도 없고 (직업이 없거나 일이나 사회 기능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 여성들이 있기 때문에) 늙는 것에 대해서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대비책이 있는가 저는 이 지점을 보는 겁니다. 저한테도 해당되기 때문에 진중하게 보는 거니 딱히 이 지점은 오해 없으면 합니다.
@서형우 일단 제 단점을 말씀을 드리자면 저는 어떤 논의를 아무 근거 없이 추상적으로 <니가 맞다, 내가 맞다> 이렇게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게 끝이 안 나기 때문입니다. 그럴 가치가 있는 주장이거나 제가 예상하지 못 하는 증거들을 가져오는 경우는 예외로 하겠습니다. 특히 제가 하지 않은 말들에서 어떤 걸 자꾸 유추하면서 대화를 하게 되면 대화가 종종 삼천포로 가고 이렇게 되면 제가 너무 많은 시간을 들여야 되거든요.
저는 제가 (생각하지 못 했거나 간과했던, 갈등도 불사하는 논란이 될 수 있는) 새로운 혹은 신선한(?) 주장 그리고 <입증>, 이 간단한 단계를 선호하고, 그게 아니면 주장에 대한 납득 가능한 다소 (신기한) 설명, 이런 것도 선호하는데, 이게 아니면 급속도록 흥미를 잃어버리는, 이거는 제 개인 선호이고 서형우님이 알 수는 없는 부분이므로, 제가 제 단점이다 미리 언급을 했습니다.
지금 쓰신 글에서도 저한테 선의가 있었는데 그걸 악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처럼 느꼈다고 첫 문장부터 언급을 하셨는데 (?????????), 저는 딱히 이런 글을 쓰면서까지 선의와 악의를 갖진 않습니다. 이런 댓글 좀 쓰면서 악의와 선의를 가지는 사람도 있군요. (이거는 생각도 안 해 본 거라 좀 신선하네요. ^^) 저는 안 그렇습니다. ^^ 얼굴도 모르고 댓글 좀 나누는 상황에서까지 선의와 악의를 가질 정도로 타인에게 관심을 두는 타입도 아니고요. 그냥 의견을 주고받는 거고 그 방식에 개인 선호도가 있는 정도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될 거 같고요.
본인의 발화 방식에 문제가 있다면 말을 해달라고 하시는데, 위에서 충분히 설명 드린 것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사실 선의나 악의와 같은 표현은 자칫 상대방의 의도를 곡해하는 것으로도 보여 다소 무례한 수 있다는 점을 참고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선과 악을 섣불리 판단하려 하는 자체를 저는 사실 좀 혐오하는데 (그 정도 판단을 하려면 판단할만한 충분한 시간이나 확증이 있거나, 신 정도는 돼야죠, 종교는 없습니다만) 그게 자신의 도덕적 자만심을 드러내는 거라고 보기 때문이죠.
서형우님은 어떤 부분이 기분 나빴냐 사과하겠다, 표면적으로는 부드럽게 말씀하고는 있지만, 인간이 다른 인간을 판단함에 있어 가능한 조심해야 하는 그 의도를 곡해하는 표현으로 저를 자극하는 유치한 대화를 하고 있고, 이거에 제가 반응하는 자체가 사실 저는 좀 피로합니다. 누군가를 죽였는데 의도적으로 죽이면 살인이고 우연히 죽이면 과실입니다. 전자는 무기징역도 되고 후자는 5년 이하인데, 그 정도로 누군가의 의도를 섣불리 판단하는 건 위험한 거라는 점 다시 말씀 드립니다. 본인도 그게 위험하다고 생각은 했는지 만약 그렇다면 사과한다, 이렇게 덧붙이기는 했네요.
그리고 또 조금 잔인하게 말씀드리자면 서형우님 이하 원 글의 주장은 사실 새로울 게 없는 상황이고 (UN에서도 젠더 이슈 언급하면서 온갖 매체에서 다 다뤄졌던 내용이고) 따라서 제가 흥미를 느끼는 지점이 별로 없으므로 더 이상 같은 주제에 댓글하지 않겠습니다.
가부장제의 역사가 오천년이라는 증거를 가져오시면 (적어도 제가 납득 가능하게 설명이라고 할 수 있으면) 그 때 제가 또 댓글을 드립죠. 우연히 가부장제가 인류 문화의 표준처럼 자리 잡았다고 하는데 지금 과학이 종교를 압도하지 못 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게 지구 탄생이나 우주도 다 우연으로 생겼다, 이렇게 말해서 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종교도 가부장제도 찬성하고 이런 입장도 아닙니다) 막말로 우연으로 가부장제가 생겼다면 딱히 남성들이 잘못한 것도 없는 거고 (세상 만사 다 우연이고 결국 다 우연적으로 해결될 텐데 뭘 그렇게 고민하면 삽니까?), 남성들이 여성을 억압하기 위해 만든 제도도 아니고 우연히 만들어진 건데 왜 여성들이 남성에게 저항하는지도 납득이 안 갑니다. 우연적으로 만들어졌으면 그냥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또 할머니가 오래 사는 것이 손자한테 유리한 것은 손자가 어린 시절에 국한합니다. 즉 어린이라서 모든 면에서 보호가 필요할 때 여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거든요. 7세나 8세처럼 학교만 가도 아이들이 자기가 하려고 하는 경향은 지금도 볼 수가 있고, (물론 그래도 어른 여성의 돌봄이 당연히 필요하나) ........
이렇게 님이 쓰신 문장 하나 하나가 다 오류이고 다 제가 다퉈야 되는 부분인데, 또 여기에 제 선의와 악의까지 보신다고 하니까 더더욱 부담이 생겨서 여기까지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가부장제가 우연히 5000년 전에 생겼다>, 이거를 입증할 증거나 납득 가능한 설명을 가져오세요. 그러면 더 대화를 하겠습니다.
@엘리어스 우선 엘리어스님에게 선의가 있었고, 제가 그 선의를 악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처럼 느껴지셨다면, 저의 발화 방식에도 문제가 있었겠죠. 어떤 부분이 기분 나쁘셨는지 말씀해주시면 앞으로 글이나 댓글을 쓸 때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미리 사과드리겠습니다.
우선 저는 원글의 해당 문장의 취지를 엘리어스님과 다르게 이해한 것 같습니다. 원글은 앞쪽에 가부장제의 역사를 오천년으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즉, 원글은 우연히 가부장제가 인류 문화의 표준처럼 자리 잡은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가진 존재로 양육되어진다는 게 원글의 해당 문장의 취지가 아니였나 싶습니다.
그러나 엘리어스님은 가부장제가 인간의 탄생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가 모든 문화에서 가부장제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씀드린 것은 그때문입니다. 가부장제가 인류 보편의 법칙이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다만 현대사회에서 가부장제와 친연성이 높은 농경문화권 위주로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그에 따라 농경문화권의 사고방식이 인류 문화권의 표준처럼 자리 잡으면서 대부분의 사회에 가부장제가 스며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하여 이견이 있으시다면 같이 이야기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진화인류학은 인간의 진화 과정의 대부분 역사에서 인간 사회는 가부장제가 아닌 모계사회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수렵채집 사회는 모계제와 친연성이 깊다고 알려진 것으로 압니다. 물론 이때도 여성과 남성의 구분이 있었을 것이며, 남성과 여성의 역할도 조금씩은 다르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현재에 기대되는 남성의 역할과 여성의 역할은 가부장제의 맥락 속에서 문화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싶네요. 여성이 여성적이여야 한다는 생물학적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여성들이 오래 살 수 있는 체내 반응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유들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제가 말하고자 한 것은 체내 반응이 아니라, 그와 같은 체내 반응들이 설계되도록 유도한 기제입니다. 진화인류학은 진화로 인하여 우리의 몸이 설계되었다고 보죠. 그래서 할머니 가설은 우리의 진화 과정에서 굉장히 많은 시기를 차지하는 수렵채집 사회에서 할머니가 오래 사는 것이 손자들에게 살아남는 데에 이점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말씀해주신 체내 반응을 설계하는 데에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날 젊은 여성들이 유대를 느끼는 관계가 없고 사회적 지위가 낮다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은 공감합니다. 이미 젊은 여성의 자살율이 굉장히 높아진 것으로 압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노력해야 할 것은 여성성과 남성성의 문화 속에서 여성이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는 데 방해되었던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 그리고 일부 여성들이 반감을 갖는 여성과 남성의 관계가 아닌, 사람과 사람으로 서로 관계 맺기를 해나가는 것이 아닐까요? ㅎㅎㅎ
@서형우 참고로 하나 더 덧붙이자면 아이를 낳은 적도 없고 결혼하지 않았음에도 오래 사는 여성들은 대부분 사회적으로 지위가 있습니다. (혹은 종교인이나 기타 어떤 사회적 조직에 복속하거나) 즉 아이나 가족은 없으나 사회적으로 고립되지 않을 수가 있었던 거죠.
그러나 지금은 너무 많은 여성들이 빠른 속도로 아이도 낳지 않고 지위도 없는 등,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과정 속에 있기 때문에, 글쎄요, 이게 어떤 방식으로 여성들의 수명에 영향을 미치고 사회 문제가 될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다만 여성 범죄가 잔혹해지고 늘어나는 지점에서 우려할 부분은 있다 추정은 할 수 있죠.
가부장제를 옹호하는 취지로 글을 읽기 시작하면 제 원 취지를 곡해하기 때문에 굳이 거기에서 머물지 말라는 의미로 덧글까지 드렸습니다.
시간 엄청 썼네요.
@서형우 그리고 덧붙여서 저는 여성과 남성이라는 구분에 있어 출산이 전적으로 여성에게 종속됨으로 인하여, 아이 양육을 양성의 부모가 키우는 방식으로 압제하는 과정에서 가부장제가 나왔을 것으로 추론했고 (여기에 무슨 상식으로 생각하는 게 있다는 건지도 도무지 모르겠는데) 그 과정을 설명 드린 겁니다. 즉 여성만이 현재까지 출산을 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아이 양육을 전적으로 여성이 책임지도록 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므로 통상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양성의 부모가 양육을 책임지도록 사회가 강제한 것이 가부장제의 발단이 아니겠는가, 이게 제 논점이거든요. 당연히 가부장제는 동성의 혹은 여러 다른 형태의 가족이나 여성 자체를 억압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굳어졌기 때문에, 현대에 이르러서 각종 갈등을 빚게 되는 거고요.
물론 모계 사회를 이루면서 여성이 아이를 낳고 아버지는 제외되거나 형식적인 존재이며 여성의 가족이 아이를 돌보는 사회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러한 사회는 대부분 소수 민족이나 특정 기간에만 존재했고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지경이며 가부장제가 대다수의 사회 근간을 이루는 시스템인 것은 부정할 순 없는 거죠.
그렇다면 가부장제 이전 그러니까 과학이 신학에 가까웠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남성이 과연 여성과 동등한 지위를 갖고자 한 시도가 없었을까 생각해보면, 대표적으로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 신을 예로 들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신 중의 신인 제우스는 머리에서 아테나라는 여신을 출산하는 데요. 즉 당시에도 남성이 왜 출산할 수 없을까 하는 논의가 있었던 것을 해당 신화를 보면 유추할 수 있는 거죠.
지금이야 x-ray 찍어서 굳이 해부하지 않아도 구조적으로 여성만이 출산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당대에는 왜 남성은 안 될까, 고민을 했었을 거고 그 흔적은 그리스 신화만이 아니라 여러 문헌에서 남성의 출산을 다루는 것에서 입증이 됩니다. 따라서 제우스는 머리에서 아들이 아닌 전쟁의 신 아테나 딸을 낳죠. 당대에도 아들이 대를 잇는다는 개념이 확고했을까 의문이긴 한데, 남성 신들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을 생각해보면, 제우스가 딸을 낳은 것도 의미가 깊은 겁니다.
즉 출산과 그 역할, 성적 기대에 대한 고민은 고대에도 있었을 거고, 아이 양육의 입장에서 가장 효율적인 게 양성 (동성은 아이를 가질 수가 없으니까요) 부모의 양육이었다, 이렇게 보고 있고, 이를 강제하는 과정에서 가부장제가 압제됐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가부장제가 여성과 남성을 만들었다고 원글 님이 주장하시는데, 저는 이게 이미 가부장제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이후에 가부장제에 반발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 보는 거죠. 사랑하지 않는데도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평생을 한 사람과 살아야 하는 고통은 예나 지금이나 싫은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당연히 가부장제에 반발하는 사람들은 있었겠죠.
인터섹스라고 남성기와 여성기 모두를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태어나면서 부터 하나의 성이 될 것을 강요받아 수술을 받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예로 들어서 가부장제가 성을 만드는 게 아닌가, 라고 반박을 하셨다면 저도 또 나름 재밌게 논의를 했을 텐데, 구태의연한 댓글을 또 이해시키느라,
그리고 할머니들이 오래 사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이론이 있습니다만, (남성이 남성 호르몬때문에 위험하게 살아서 일찍 죽는다 등등), 개인적으로는 여성이 임신 과정에서 면역 반응이 유연화되는 것에서 유래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여성은 기본적으로 자기와 다른 개체의 유전자를 체내에서 합성해서 배양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복잡한 면역반응입니다. 이거를 안전하게 해내는 자체가 건강의 증거라서, 아이를 5명 6명 출산해도 고령으로 살 수가 있는 거죠. 따라서 출산한 여성은 헌혈도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고요.
다만 이제는 아이를 한 명도 낳지 않는 여성들이 상당히 많아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런 여성들이 과연 지금의 할머니들보다 오래 살 것인가, 이 부분은 논의의 대상으로 남아 있는 거죠. 만약 출산하지 않은 여성이 출산을 하거나 많이 한 여성들보다 오래 못 산다면 혹은 비슷하게 산다면 역시 출산은 면역을 강화시키는 거라고 볼 수 있는 거고요.
또 한편으로는 아이를 5명이나 6명 낳은 할머니가 될 경우 자신이 낳은 가족이 풍부해지므로 사회 관계가 단절되지 않은데 (물론 가족 간에 소통이 낮은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세상 어딘가에 자신의 자식과 손자들이 있다는 인식 자체가 심리적 위안을 줄 수 있다는 관점) 아이를 낳지 않은 여성의 경우에는 가족이 없으므로 사회 관계가 단절될 가능성이 높아지죠.
과거에는 출산을 하지 않더라도 가족 관계가 유지가 됐기 때문에 (결혼을 안 하거나 이혼한 자녀 없는 이모나 고모, 삼촌으로서, 주변에 꼭 있었음) 이제는 그러한 가족 관계마저도 실제로 훼손된 상태라서, 과연 아이를 낳지 않고 가족 관계도 없는 단절된 여성들도 아무 문제 없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오래 살 것인가, 이 문제는 관찰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통상 대부분의 사회에서 여성들은 가족이라는 혈연 중심의 관계에서 안정적인 소통을 해왔으나 이제 그게 급속도록 무너진 상태니까요. (물론 가족이 고통이고 학대의 원흉인 경우도 있긴 합니다) 남성들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일찍 사회적 고립이 시작됐고 때문에 범죄율등 각종 지표가 위험 수위에 있기도 합니다만.
이 정도로 여러 예시로 설명을 드렸으니 제가 무슨 오류가 있느니, 과거 상식에 어떻니, 이런 어설픈 판단은 제대로 된 자료를 가지고서 말했으면 하고 요청을 드리겠습니다.
@서형우 <일단 가부장제가 모든 문화에 당연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말씀드립니다>라고 하셨는데, <태초에 모든 이들은 사람으로 태어나 ~ 가부장제>로 연결한 사람은 제가 아니라 원글님이시기 때문에, <그렇다면 태어난 모든 이들은 가부장제로 이어지느냐 즉 가부장제가 모든 문화에 나타나느냐>는 지적은 제가 아니라 원글님에게 하셔야 된다고 보고요. 만약 태어난 모든 이들이 가부장제로 이어지지 않아서 여성과 남성으로 만들어지지 않는 사회가 있다면 그걸 예로 가져오시는 게 맞는 거 같습니다. 그리고 그 반박 예는 제가 아니라 원글님에게 제시를 해야죠.
즉 <태초에 인간 -> 가부장제 -> 여성과 남성으로 만들어짐> 이거를 입증할 책임은 제가 아니라 원글님에게 있는 거고, <태초에 인간 -> 가부장제 사회 혹은 가부장제 아닌 사회 -> 남성과 여성이 구분돼 있음 혹은 남성와 여성이 구분돼있지 않음> 등도 주장하는 서형우님에게 그 입증 책임이 있는 거죠.
원글님은 가부장제가 먼저이고 여성과 남성으로 구분되는 게 나중이다 이런 입장이라면, 저는 여성과 남성으로 일단 태어나는 거고 그 과정에서 가부장제가 나온 것이다, 이런 입장인데, 터무니없이 가부장제가 모든 문화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을 왜 저한테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즉 원글님이나 저나 가부장제가 있는 사회라는 전제 하에서 여성과 남성의 구분이 전후로 발생하는 부분을 토론하고 있다 보여지므로, 서형우씨의 댓글은 제가 볼 때는 맥락 파괴입니다.
저나 원글님은 A (가부장제)가 먼저냐 B (여성 남성 구분)가 먼저냐 이런 토론을 하고 있는데, 서형우 님은 느닷없이 A가 반드시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을 하게 되면 논의가 삼천포로 빠지죠. 게다가 이 A 주장은 제가 아닌 원글님이 하신 건데 저한테 왜 그런 댓글을 다시나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여기에서 제가 무슨 평균의 오류에 빠졌다는 것인지. 저는 A와 B의 선후에 집중해서 답을 드렸다 이렇게 다시 누차 여러 번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 정도로 설명을 드렸으면 이제는 이해를 하셨어야 된다고 보고요.
님의 말씀을 제가 이해하기 좋게 편집을 하자면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구분은 모든 인류에게 해당이 되지만 가부장제는 그렇지 않은데 마치 이 두 개가 상관이 있는 것처럼 표현했다 제 글을 이렇게 오독을 하신 거 같은데, 애초에 원 글이 가부장제가 생물학적 구분보다 먼저라는 게 원글이기 때문에 오히려 위의 주장은 제 주장을 더 입증하는 셈이 되는 겁니다. 이해하실까 모르겠네요.
@엘리어스 일단 가부장제가 모든 문화에 당연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일단 명확히 말씀드립니다. 또한 엘리어스님의 논의는 평균의 함정에 빠져, 너무 쉽게 결론을 내셨습니다. 진화인류학을 개론 수준으로 배운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평균소득과 중위소득이 다르듯, 평균 수명과 그 시절에 일반적으로 살아가던 수명은 다릅니다. 요절로 평균수명이 깎였을 뿐 일반적으로 여성이 일반적으로 죽는 나이는 70대 가량이었습니다. 그러니 의학의 발전이 그렇게 대단한 것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죠.
진화인류학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할머니 가설이 나왔습니다. 남성과 여성 중에서 여성의 평균 수명이 더 높은 이유로 일반적으로 모계제였던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할머니가 오래 살아있는 것이 손자의 생존에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가설입니다.
결국 우리가 이미 상식으로 생각하는 것을 버리지 않고 과거를 탐구할 수는 없는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엘리어스님의 댓글의 한계는 상식으로 생각하는 것을 버리지 않은 채 과거를 탐구했기 때문에 생긴 오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엘리어스님의 댓글에서 흥미로운 점은 남성과 여성이 짝결속을 이룬 일부일처의 관계의 중요성을 이미 잘 파악하고 계신다는 점입니다. 진화학자들은 인간의 진화를 이룬 결정적인 사건 5가지 중 하나로 남성과 여성의 짝결속을 꼽는다고 알고 있으나, 정확한지는 모르겠군요... 어쨌든 진화 중 중요한 지점입니다. 남성과 여성이 육아를 위해 한 가정을 이루고 둘의 관계를 중요시한 것이죠. 그래서 오히려 진화 상에 공작새의 깃털과 숫사자의 갈기와 같은 암과 수의 차이가 인간에게는 오히려 적은 편입니다. 즉, 일반적으로 생존경쟁과 동시에 짝짓기 경쟁을 벌여야 하는 남성의 운명이 적기에 오히려 남성과 여성 거의 비슷한 생존 경쟁의 압박만 느끼게 되었고, 그렇기에 실제로 남녀 성간의 차이보다는 개체 간의 차이가 훨씬 큰 것이 인간입니다.
그 점에서 오히려 신승아님이 서술하신 <태초에 모든 이들은 '사람'으로 태어나지만 가부장제의 남/녀 이분법에 따라 '남성'과 '여성'으로 만들어진다.>라는 말이 엘리어스님의 댓글보다 더 진화인류학적으로 부합하는 서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배경 지식이 없으면 쉽게 이해하기 힘든 현학적인 글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터라, 그런 저의 성향에 기대어 다소 러프하게 글을 읽었으므로, 일부 제 글에서 이해를 못한 듯한 뉘앙스를 느끼더라도 일단 넘어가 주시면 좋겠습니다.
<태초에 모든 이들은 ‘사람’으로 태어나지만 가부장제의 남/녀 이분법에 따라 ‘남성’과 ‘여성’으로 만들어진다.>고 하셨는데, 태초에 사람은 여성과 남성으로 구분되어 태어납니다. 그리고 그 바탕 위에서 가부장제가 만들어졌다고 보는 게 제가 보기엔 상식적인 사고인 거 같고요.
단순하게 그 시대로 가봤을 때, 태어나서 보니 인간이 남성과 여성의 두 개로 나뉘었다는 것과 그 둘이 서로 다른 성적 기능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둘 중 하나인 여성은 생존 기간 동안 임신의 부담을 계속 가져야 하고 반대로 다른 성인 남성은 임신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게 도출이 되는 거죠. (여성의 평균 수명이 40세를 넘어간 시점은 현대니까요. 50년 전만 해도 할머니들 대부분은 10후반에서 출산을 시작해서 40대 내외에 죽었죠. 이 경우 아이 아버지를 구체화하지 않으면 10대 여성은 아이를 낳은 채로 혼자 양육까지 해야 됩니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임신으로부터 자유로운 남성 쪽이 임신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고 단순하게 욕구만 해소하려고 할 텐데, 다시 말씀드리지만, 오히려 가부장제는 아이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을 명백하게 남성 가계로 부담하는 구좁니다. 한국 가족법에서도 혼인 중 태어난 아이는 반드시 아버지 호적에 올려야 해서 심지어 부인이 바람 나서 낳은 남의 아이도 법에 의하면 해당 아버지 자식이 되거든요. 이게 가부장제의 기본 구좁니다. <내 배 아파 낳았는데 왜 남편 가계에 올라가냐?> 이런 질문은 논외로 일단 치겠고요. 가부장제는 아이에 대한 모든 책임을 남성 가계에 지우는 거다, 이겁니다.
남자들이 결혼하고 도박에 미쳐서 가정을 버리고 바람을 피우고 이런 망나니짓 하는 것과 가부장제의 기본 흐름을 오인하시면 안 된다고 봅니다. 어머니가 어머니답지 않듯이 아버지도 아버지답지 못 한 망나니가 있는 것과 가부장제의 모토를 헷갈리지 말라는 거죠. 모든 자식은 어머니는 반드시 확실하나 아버지는 불안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혼인으로서 태어난 아이는 무조건 어머니와 아버지의 자식으로 권리를 부여 받는 겁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고아들을 떠올려보시면 이게 대단한 권리 부여라는 것을 상기할 겁니다. 어른들이 애를 낳아만 놓고 그냥 버려둘 수 없는 구조로 만들어 놓은 거예요.
이 과정에서 여성이 억압되는 등의 부당함이 발생한 것과 가부장제의 맥락 자체는 오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잘못된 제도는 고쳐나가는 것이고 고쳐나가자면 원래 취지를 바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아주 좋은 글입니다!!! 그런데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리얼돌 관련한 부분에서 성욕은 문화적 구성물이라고 말하는 부분입니다. 제가 인류학 석사이고, 사회문화 인류학 분야이긴 하지만, 생물인류학 파트의 주장들도 사회문화 인류학자들이 어느 정도는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제가 생물인류학을 깊게 공부한 것은 아니고, 학과 수업 조교로 일하면서 청강 정도를 했습니다. 그때 들었던 생각을 정리하자면, 문화인류학자들의 성 관련 민족지 중 특정한 부분들은 특정한 환경에 대한 생물학적 반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죠! 그래서 성욕이 단순히 문화적 구성물이라는 말은 조금 무리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동양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노골적으로 묘사해놓은 일본 성인물 시장에서 표현된 성욕은 누가 뭐래도 문화적 구성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으아 수준이 매우 높은 글입니다 논문 수준의 글이군요
잘 읽고 갑니다
모든 것이 뒤로 간다고 생각할때 끝끝내 길을 찾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마음이 다시 굳게 다져지네요. 언제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신승아 감사합니다! 저도 글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ㅎㅎ 다음에 독서모임이라도 같이 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ㅎㅎ 정말 글이 좋습니다 ㅎㅎ
의견 감사합니다 @서형우 님!
말씀하신 마지막 문장의 문제의식처럼, 저자 역시 일명 포르노 시장에서 묘사한 성욕에 한정하여 ‘문화적 구성물’이란 표현을 썼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포르노에서 ’성욕=성교(삽입섹스)'를 의미하니까요.
글을 추리고 추렸음에도 능력 미달로 인해 덜고 빼는 것에 실패해서 안타까움이 남았는데, 그 부분을 딱 짚어주셔서 흥미롭게 읽었어요.
저도 성욕을 둘러싼 섹슈얼리티 파트는 앞으로 더 공부하면서 채워나가려고요!
@최성욱 5일 내내 이 글 하나 붙잡고 있었습니다.
능력 부족으로 망한 글이 되었다고 자괴감 장난 아니었는데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송시무스 님 덕분에 저도 끝까지 싸울 용기를 얻습니다!
매번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