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웨이브] 첫번째 물결,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성 정치학의 쟁점들

신승아
신승아 · 삐딱하고 멜랑콜리한 지구별 시민
2024/04/01
무지의 광풍 속에서 살아남기

“공부하는 고통은 잠깐이지만 못 배운 고통은 평생이다” 나는 공부를 젊은 날 이뤄내야 할 성취이자 성공의 척도로 삼는 격언에 반대한다. ‘앎’을 탐구하는 과정은 필히 고통과 상처를 수반한다.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몸들의 역사를 마주하고 소수자의 언어로 세상을 새롭게 인식하는 것은, 혼란과 괴로움의 연속이다. ‘상식’이 모래성처럼 부서질 때의 충격, 나의 천진이 폭력임을 깨달았을 때의 부끄러움, 연대와 존엄을 가르쳐 주지 않은 교육에 대한 분노가 쌓여간다. ‘정상 사회’와 불화하며 우는 날이 많아진다. 그래서 공부는 아름다울 순 있을지언정 기쁠 순 없고, 불행한 삶을 끌어안을 순 있을지언정 행복하진 않다. 잠깐 웃고 오래 슬퍼하며 차갑게 분노하는 일. 이것이 공부다. 

여성주의, 탈식민주의, 생태주의, 장애학을 만난 것은 쓸쓸한 축복이었다. 중산층 계층에 편입되려고 발악했던 나는, 어느덧 내 집 마련이 하늘의 별 따기가 되어버린 사회 구조를 질문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정치적 중립’ 뒤에 숨어 비겁함을 합리화했던 과거와 달리,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라고 선언하는 사람으로 변모했다. 서구 백인 이성애자 비장애인 남성의 언어를 남발하며 ‘지당하신 말씀’만 반복했던 날들과 결별하고, ‘인종, 젠더, 계급’을 가로지르며 불온하고 독창적인 언어를 발명했다. 낯선 언어는 획일화된 세계에 도전하는 혁명이자, 나를 구원하는 복음이었다. 공부를 통해 위치성과 당파성을 자각하면서 진화를 거듭한 몸은 주어진 현실과 창조된 현실 사이에서 자주 충돌했다. 부딪히고 다치고 깨질 때마다 다시 태어났고, 앎의 뿌리가 튼튼해질수록 더 많은 몸들과 연결되었다. 그 순간, 고통받는 타인은 더 이상 ‘타자’가 아니었다. 내가 그였고 그가 나였다.

내가 진화를 거듭하는 사이에 세상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아니, 회복 불능 판정을 내려야 할 만큼 망가졌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류는 병들어간다. 자본주의는 무한대로 몸집을 불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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