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를 영원히 사랑할 순 없을지라도

이건해
이건해 · 작가, 일본어번역가. 돈과 일을 구함
2023/05/05

예전에는 맥주를 참 좋아했다. 냉장고에는 대체로 맥주가 구비되어 있었고, 느긋하게 쉬면서 영화를 보거나 치킨 따위를 먹을 때면 항상 맥주를 꺼내서 곁들였다. 어떤 날은 길게 영화를 보면서 대낮에 혼자 맥주 1500밀리를 마셔 없애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과한 짓이었다. 건강에 해로운 만용이라서 그렇다기보다는, 혼자서 두세 시간 만에 음용하는 물질의 양으로서 적당한 선을 좀 넘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다. 맥주가 아니라 주스나 물이라도 그건 좀 너무했다.

그로부터 오래지 않은 어느날, 술을 많이 마시는 후배를 만난 나는 ‘허허, 어쩌다 보니 그 정도로 마시고 말았지 뭐야’하고 농담처럼 털어놓았다. 바보짓 자랑이 목적은 아니었고, ‘그 정도는 보통이죠. 저는……’ 하는 말을 들어서 내가 결코 이상하지 않다는 위안을 얻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믿었던 후배는 ‘하하…… 그건 좀 많네요.’ 라는 식으로 반응했다. 믿는 도끼에 찍힌다는 게 이런 것일까. 대단치도 않은 일인데 자존감에 생채기가 나고 말았다.

그게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아니지만, 그날 이후로 여차할 때 맥주를 시원하게 마셔대는 취미는 본격적으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마 나이 탓이겠지? 그러나 신체에 어떤 변화가 생겼을 때마다 늙어서 그렇다는 이유를 대는 건 좋지 않은 버릇이라는 생각을 요즘은 진지하게 하게 되었다. 어쩌다 가끔 젊어지는 시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죽을 때까지 늙어서 그렇다는 타령만 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아무튼 맥주가 싫어진 건 아닌데 잘 맞지 않게 된 느낌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매운 것을 참 좋아했다가도 언젠가부터 속이 편치 않게 되어 멀어지기도 하는 것처럼, 나는 2~3년 전부터 맥주가 꿀떡꿀떡 잘 넘어가는 경우가 크게 줄었다. 대사량이 줄어 식사량이 감소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음주가 어느 정도를 넘기면 만족감이 꺾인다는 사실을 두뇌가 마침내 체득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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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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