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영화의 가치

이건해
이건해 · 작가, 일본어번역가. 돈과 일을 구함
2023/07/26


지난주에 아리 애스터 감독의 “보 이즈 어프레이드”라는 영화를 봤다. 공포 영화를 어느 정도 즐기는 사람이라면 분명 이름을 들어봤을 이 감독의 전작으로는 “유전”과 “미드소마”가 있는데,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다소 느슨해진 공포 영화계에 긴장감을 가져왔다고 할 만큼 색다른 맛을 선사했다. 나는 두 작품을 모두 좋아하지만 비교적 대중적인 형식을 따른 “미드소마”를 더 좋아해서 감독판까지  도합 세 번을 보았다. 어릴 때부터 좋아한 오컬트 취향이 어디 가지 않는 모양이다.

다만 이번 작품은 딱히 호러나 오컬트라곤 하기 어려운 터라 영화관 찾아갈 여유를 상실한 나는 나중에 집에서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주변 친구들 여럿도 아리 애스터 감독 영화라면 무조건 보겠다는 오컬트 호러 마니아라서 기회를 잡아 같이 볼 수 있었다.

구체적인 스포일러를 최대한 피하며 흐름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자. 처음에는 심리 문제를 겪으며 빈민가에 혼자 사는 주인공 ‘보’가 어머니를 찾아갈 예정인데, 밤중에 조용히 좀 하라는 엉뚱한 항의 쪽지가 계속 날아드는가 싶더니 출발 직전에는 짐과 열쇠가 없어져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가 된다는 부조리극처럼 흘러간다. 그 와중에 어머니를 꼭 찾아가야만 하는 소식을 듣고, 충격에 물과 함께 먹어야 하는 약을 먹고 보니 물이 없고, 물을 사러 건너편 가게에 뛰어갔더니 카드가 막혀 있고, 현금을 긁어모으는 사이에 거리의 노숙자들이 집을 점거해서 들어가지 못하게 되고…… 이런 식이다.

그러다 말도 안 되는 사고가 연달아 이어진 끝에 보는 외과 의사의 집에서 치료를 받으며 지내게 되는데, 이 집도 우화의 일부로 보일 정도로 과장스럽게 다정한 중산층이다. 그러면서도 보에게 방을 빼앗긴 그 집 딸은 보를 경멸하고 괴롭히며, 부인은 뭔가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는 현대 고딕 호러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기다가…… 또 와장창 사고가 터져서 보는 허겁지겁 도망치게 된다.

슬슬 뭐가 대체 어떻게 돌아가려는 것인지 의문이 아주 깊어지는 와중에, 보는 뜬금없이 숲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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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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