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Master -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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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ypebeing · 마음가는대로 무엇이든, Fiction
2023/09/25
완전히 망한 상태였다.
모양은 협의이혼이나 내용은 이혼당한 거였고 집에서 나와 약 한 달간의 모텔 생활 끝에 수중에 쥔 돈으로 구할 수 있는 거처를 찾아 이 동네로 온 지도 한 달이 지났다.
이젠 지난날의 행실을 내가 잘 알기에 아프지도 억울하지도 않았다.
아이들도 별로 서운해하지 않아서 한 달에 한 번 볼 수 있다는 것은 내게만 다행일 뿐이었다.
아내는 물론 아이들도 반기지 않을 듯해 나는 당분간 보고 싶어도 참고 지내기로 했다.
이혼 직전, 음주운전으로 면허마저 취소돼 차까지 처분하고 나니 그야말로 무인도에 홀로 버려진 느낌이었다.
   
나는 대한민국 최고의 광고기획사에서도 탑 오브 탑인 카피라이터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과장 없이 모든 대기업 광고의 20%는 내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커피부터 자동차, 아파트까지 내 머릿속에서 나온 수많은 광고 카피들이 시장을 이끌어가고 있다.

중학생 때부터 나는 일찌감치 이 분야를 목표로 공부했고 결국 입문해서 미친 듯이 일했다.
실적에 따른 빠른 진급과 각종 인센티브로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동기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입에 만족했으며 갈수록 자연스럽게 일과 관계된 다양한 유흥 속에 빠져 살았다.
그러는 동안 나의 가정적 기반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는 걸 몰랐고 그저 충분한 돈만 공급해주면 아무 문제 없으려니...하다가 결국 세 번째 음주운전이 걸렸을 때 제대로 파국을 맞고 말았다. 
일이 너무 좋았고 나의 몰입과 노력에 대한 대가, 그리고 업계의 분방한 분위기에 빠져 사느라 아무것도 보지 못한 내 탓이었다. 일과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 땐 이미 늦어 있었다. 아내가 자신의 입장에 더해 아이들의 현재와 미래까지 들이대니 대항할 여지가 전혀 없었다. 
   
다행히 회사에서는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만이 유일한 현실적 위안이었다.
오라는 곳은 많으나 업계 최고인 이 직장을 놓치면 그야말로 끝장이라는 생각에 나는 사력을 다했다.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며 회사에는 건강을 위해 차를 두고 다닌다 하고 갖은 핑계로 한 달 정도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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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게시된 이야기는 허구이며 픽션입니다. 혹시 만에 하나 현실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더라도 이는 절대적으로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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