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 : 여든 살에 글과 그림을 배운 순천 할머니들의 그림일기

신승아
신승아 · 삐딱하고 멜랑콜리한 지구별 시민
2023/09/27
'배움'이라는 때

"배움에도 때가 있다."라고 짐짓 훈계하거나, "어린 시절로 돌아가면 공부만 열심히 할 텐데..."라며 푸념하는 이들은 많다. 하지만 정작 정해진 '때'가 어떤 시기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이에 걸맞는 본분을 지키라고 주문하는 21세기형 미신. 각 시기별로 달성해야 할 목표가 있다고 세뇌하고, 이를 어기면 가차없이 '실패자'로 규정해버리는 연령주의는 무수한 협박을 만들어내며 개인의 서사를 지워버렸다. 시민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복지의 일부이면서, 스스로 탐구하고 설계해야 할 '배움'의 영역마저 연령에 국한시킨 결과, 모두에게 허락되어야 할 배움의 길은 오랜 시간 젊은이들의 전유물로 통용되었다. 과연 사회의 믿음대로 배움의 때라는 것은 존재하는가. 만약 그런 때가 존재한다면, 어쩔 수 없이 때를 놓친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이야기되어야 하는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외부의 압력으로 인해 꿈을 펼치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가난한 집안의 장녀로 태어나 줄줄이 딸린 동생들을 양육하느라 여공이 되어야 했던 사람, 가난 때문에 어렵사리 초등학교만 졸업했거나 교문 문턱도 밟지 못한 사람까지 그 사연도 각양각색이다. 흥미로운 건 주로 배우지 못해 한이 맺힌 사람들은 남자보다 여자들의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사실이다. '여자는 배워도 쓸데가 없다.', '여자가 너무 많이 배우면 시집가서 남편한테 대들어서 안된다.'라는 말들은 과거의 소녀들이 읽고 쓸 기회를 박탈했고, 남성에게 보호 받는 몸으로 존재하길 강요했다. '여자의 역할'이라는 미명 하에 피해자만 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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