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또의 고향

박선욱 · 시, 동화, 소설 및 평전을 씁니다.
2023/02/07
◆손바닥 동화◆
   
   
르또의 고향
   
박선욱
   
   
안녕하세요? 내 이름은 르또라고 해요. 생김새는 맑고 속이 비치며, 막히는 데만 없으면 언제든지 굴러갈 수 있답니다. 색깔은 하얗고 모양은 둥근 편이지요. 그렇지만 나팔꽃 속에 들어가면 꼼짝없이 깔때기 모양이 되고 맙니다.
참 우습지요? 맛도 빛깔도 냄새도 없이 어느 곳에서나 다 꼭 맞게 변하는 내 모습이 말이에요.
한데 내 이름이 왜 르또냐구요? 언젠가 내가 호박잎 위에 있을 때 바람이 불어와 잎사귀 아래로 굴러 떨어진 적이 있었어요. 그때 풀잎이 내 몸을 받아 주면서 또르르 굴러 떨어지는 내 모양을 보고는 ‘르또’라고 거꾸로 별명을 붙여 줬는데, 그게 그만 내 이름이 되고 말았어요.
내 고향은 여기서 꽤나 먼 곳에 있어요. 하늘이 바로 내 고향이거든요. 몸은 비록 땅에 떨어져 보고 싶지 않고 만나고 싶지 않은 것들과 함께 지내지만, 난 알아요. 내가 얼마나 귀하고 자랑스런 몸인가를. 그래서 난 때때로 동무들과 얘기를 할 때도 늘 고개를 꼿꼿이 세우곤 하지요.
어느 날, 나는 들찔레와 날풍뎅이, 개나리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다툰 적이 있었지요. 그들은 내게 따뜻이 대했는데도 나는 단지 걔네들이 장미꽃보다 화려하지 않고 장수하늘소보다 멋지지 않으며 백합보다 아름답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그 친구들을 무시했던 거랍니다.
난 지금 기분이 몹시 상해 있어요....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1982년 《실천문학》 으로 등단. 시집 《회색빛 베어지다》 《눈물의 깊이》 《풍찬노숙》, 인물이야기 《윤이상》 《김득신》 《백석》 《백동수》 《황병기》 《나는 윤이상이다》 《나는 강감찬이다》 등. 《윤이상 평전: 거장의 귀환》으로 제3회 롯데출판문화대상 본상 수상.
315
팔로워 5
팔로잉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