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소년과 소녀가 나오는 이야기에 끌린다 2

이건해
이건해 · 작가, 일본어번역가. 돈과 일을 구함
2023/03/07
최근에는 쓸쓸한 소녀가 나오는 ‘슈퍼 커브’를 애니메이션으로 봤는데, 실생활에 가깝기로는 이게 제일이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 코구마는 여고생으로, 설명은 나오지 않지만 가족도 가까운 친척도 친한 이웃사람도 없는지, 혼자서 작은 연립주택에서 무미건조한 생활을 하며 매일 자전거로 학교에 다니고 있다. 밥은 레토르트로 처리하고, 학교에도 친구는 없다. 따돌림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조용히 학교와 집을 왕복할 뿐인 생활이다. 생기라곤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보기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생활이었다.

그런데 그런 코구마가 힘들게 하교하던 어느날, 시원하게 달려가는 오토바이를 보고 좋아보였던지 근처의 오토바이 취급점에 가본다. 물론 학생이 도저히 지불할 수 없는 가격이다. 그런데 포기하고 돌아서려니 주인장은 아주 싼 중고가 있다고 슈퍼커브(한국에서 배달에 흔히 쓰는 오토바이와 유사) 하나를 꺼내준다. 이유를 물으니 주인을 세 명이나 죽인 사고 물건이라고. 하지만 코구마는 상관없다고 구입한다. 그 반응은 미신을 믿지 않는다기보다는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는 것처럼 들린다. 그 정도로 메마른 삶이었다.

그러나 중고 슈퍼커브를 사서 길들이고 정비하고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고, 행동 반경을 넓혀가면서 코구마의 생활에는 조금씩 색채가 돌아온다. 학교간의 사환 같은 아르바이트도 하고, 이상할 정도로 오토바이를 좋아하는 반 친구와도 친해진다. 전반적으로 잔잔해서 엄청난 역경을 극복하고 전국 바이크 대회에서 우승을 한다는 식의 드라마틱한 얘기가 펼쳐지는 것은 아니지만, 중고 바이크 하나를 구입함으로써 우울과 죽음의 문턱에 있는 것처럼 보이던 학생이 조용히 생동감 넘치는 세계로 나아가는 모습은 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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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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