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대 중국어는 근고를 재정의하는가

晦溟
晦溟 · 그믐달과 아득한 바다
2024/04/27
이상적인 언어의 시대 구분은 언어학자가 판단하기에 중요하거나 특징적인 언어의 유형적 개신에 기반해서 정립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역사 문헌이 해당 언어의 공시태를 반드시 균등하고 풍부하게 반영한다는 보장이 없으므로, 필연적으로 특정 공시태를 총체적으로 반영한 몇몇 문헌 자료를 기준으로 편향적으로 정립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본어 음운사의 시대 구분을 보면, 나라 시대의 《만엽집》(萬葉集)을 기준으로 ‘고대 일본어’를 정립하고, 무로마치 시대의 키리시탄 문헌을 기준으로 ‘중세 일본어’를 정립합니다. 한국어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음운 체계의 총체를 제공하는 자료는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향가, 구결, 이두 자료를 기준으로 ‘고대 한국어’를 정립하고, 15세기 한글 창제를 기준으로 ‘중세 한국어’를 정립합니다.

중국어의 경우 육법언(陸法言)의 《절운》(切韻)을 바탕으로 중고 중국어를 정의합니다. 《절운》 이후 시대가 흐르며 중국어의 음운 체계가 변화했음에도 당대에 나온 《당운》과 송대에 나온 《광운》(廣韻) 등은 오로지 《절운》 체계에 기반하여 현실음과는 괴리된 이상적인 운서를 추구하며 증보되었습니다. 그 뒤에 비로소 현실음을 총체적으로 재반영한 운서가 원대의 《중원음운》(中原音韻)이었기 때문에, 이것을 기준으로 근고 중국어를 정의합니다. 《중원음운》은 현대 관화(官話) 제방언 체계의 기초라고 여겨지므로, 《중원음운》가 반영한 근고 중국어를 ‘조기 관화’라고도 부릅니다. 그런데 ‘관화’적인 체계의 출발점은 정말로 원대일까요?

2010년대 이래 거란어학의 눈부신 발전과 함께, 거란문자 자료에 반영된 요대 중국어에 대한 연구도 상당히 진척되었습니다. 거란소자로 표기된 중국어 음절에는 이미 입성(入聲)의 사성(斜聲) 합류, 전탁(全濁) 성모의 청음(淸音)화, 차탁(次濁) 성모의 공명음화 등 전형적인 근고 중국어 체계의 특징들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중고 중국어와 근고 중국어를 구분짓는 또 하나의 중요한 차이점은 성조의 추이와 분합(分合)입니다. 요대 중국어의 성조 체계는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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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언어학, 중국어 음운학, 한자학 전반, 역사 요리서, 서체, 거란어,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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