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화’는 주로 ‘가족'을 향하진 않나요?
2022/04/15
나는 가끔 아직 완전히 어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생물학적 나이만 어른일 뿐 내면도 ‘어른’이라는 단어와 어울리는가를 생각하면 머릿속에 물음표가 백 개쯤 뜨는 느낌이다.
만 스무 살이 되던 순간을 기억한다. 생일이 되는 12시 땡 하고 넘어가는 순간 이제 빼도 박도 못하는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겠다는 생각에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유를 얻었다는 설렘보다 어떤 일을 해도 ‘내 책임’이 되었다는 중압감이 더 컸던 것 같다. 왠지 모르지만 무서운 생각이 많이 들었다. 어리광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나이가 된다는 게, 감정의 컨트롤조차도 ‘어른답게’ 해야 한다는 것이 버겁게 느껴졌다고나 할까... '어른다움'이 뭔지 아직도 모르면서......
생각해보면 나는 ‘화’를 잘 '표현'하는 어린 사람이었다. 과거형으로 표현한 것은 그나마 지금도 하고 있는 나의 노력을 폄하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화’를 잘 '표현'하는 어린 사람이었다. 과거형으로 표현한 것은 그나마 지금도 하고 있는 나의 노력을 폄하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느끼는 불만들은 필터 없이 거칠게 쏟아지곤 했다.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냐’는 것과 ‘말을 왜 그렇게 해’ 라는 말이 그 당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화를 냈던 건지 다시 생각해 보면 딱히 뭐 떠오르는 것도 없다. 사춘기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된 짜증 가득한 시절을 지나가는 중이었을 수 있다. 그냥 마음에 안 드는 모든 대상이 나에겐 ‘화’의 원인이었고 다듬어지지 않은 가시 돋친 단어들로 누군가에게 말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고나 할까. 상대방에게 상처를 내고, 되돌아오는 거친 단어에 나 또한 상처 받았으나 그 와중에도 어쩌면 내가 더 아프다고 소리치느라 또 ‘화’를 냈던 것 같다.
딱히 계기랄 것도 없고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르지만 조금씩 ‘표현’의 방식을 바꿔보기로 한다. 그것도 철저히 ‘듣는’이를 위한 나의 최선의 ‘배려’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노력이었다. 화가 나면 일단 참아보고, 표현하지 않으려 애를 쓴다. 정 안되면 완곡한 부탁의 말로 운을...
딱히 계기랄 것도 없고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르지만 조금씩 ‘표현’의 방식을 바꿔보기로 한다. 그것도 철저히 ‘듣는’이를 위한 나의 최선의 ‘배려’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노력이었다. 화가 나면 일단 참아보고, 표현하지 않으려 애를 쓴다. 정 안되면 완곡한 부탁의 말로 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