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서평] 세계의 운명을 설명하는 거대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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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9

By 주경철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무기, 병균, 금속이 어떻게 문명의 불평등을 낳았는가』는 인류사의 장기적 진화 과정을 다룬 최근 저작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둔 편에 속한다. 1997년에 출판된 후 20여 년이 지난 현재도
흔히 대학 도서관 대출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점을 말해 준다.



세계는 왜 불평등한가

저자는 일찍이 1972년 뉴기니 해안가에서 만난 이 나라 정치가 얄리(Yali)가 던진 질문으로 말꼬를 튼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cargo)’을 만들어 뉴기니까지 가져온 반면 어째서 흑인들은 그런 화물을 만들지 못하는가? 역사학이나 사회과학 분야 연구자들이 통상적으로 제기하는 방식으로 질문을 바꾸면 이렇게 될 것이다. 왜 서구가 그토록 부유하며 또 막강한 힘을 가지고 나머지 세계를 압도하게 되었는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런 질문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답들이 제시되었으나, 그 답들은 흔히 민족적·문화적 혹은 인종적 편견을 내포하기 십상이었다. 백인들이 더 지적이고 머리가 좋아서 선진적인 문화를 만들고 경제적·정치적 우위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는 식이다. 저자는 그런 점을 극구 비판한다. 인간 집단들 간 지성의 차이는 없으며, 불평등의 원인은 다른 데에서 찾아야 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답이 바로 ‘총·균·쇠’, 다시 말해 무기·병균·금속이라는 요소들이다. 몇 가지 더 추가하자면 말, 선박, 정치 조직, 문자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요소들을 갖추고 그 힘을 유리하게 사용하는 사회가 그렇지 못한 지역들을 지배한 것이 세계사의 흐름이며, 그로 인한 불평등이 현재 세계의 모습이다.

‘총·균·쇠’를 가진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 간 극적인 조우와 그로 인한 대파국의 모습을 잘 보여 주는 사례로 이 책은 피사로 일행의 잉카 제국 정복을 제시한다. 1532년 11월 16일, 피사로가 이끄는 스페인군이 페루의 고지대 도시 카하마르카로 들어와 잉카 제국 황제 아타우알파와 대면했다. 수백만 명의 인구를 보유한 대제국의 한복판에서 8만 명의 황제 호위군과 마주한 스페인 군인들은 고작 168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몇십 분이 채 지나지 않아 피사로는 황제를 사로잡았고, 이후 8개월 동안이나 황제를 인질 상태로 붙잡아 두고는 몸값으로 가로 6.7m, 세로 5.2m, 높이 2.4m의 방을 가득 채울 만큼의 황금을 받아냈으며, 그나마도 약속을 지키지 않고 황제를 처형했다. 어떻게 이런 기이한 사태가 벌어졌단 말인가?



직접적 요인, 궁극적 요인

구대륙(유라시아)과 신대륙(아메리카) 사람들은 만 년 이상 서로 격절된 상태로 살아가다가 1492년 콜럼버스의 항해 이후 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그 이후 일어난 일들을 보면 피사로의 정복 사례와 유사하게 유럽인들이 너무나도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곤 했다. 유럽인들이 강력한 무기(쇠로 만든 칼과 대포), 선박과 말, 군사 조직 측면에서 압도적으로 우월했기 때문이지만,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요소는 병균이다. 유럽인들이 자신도 모르게 묻혀 들여온 각종 병원균들이 수많은 현지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예컨대 천연두는 15세기 말 유럽인들에게는 완전히 면역이 갖추어져 있어서 간혹 어린이들이나 걸리는 유순한 병으로 정착해 있었으나, 이 병균에 대해 면역이 전혀 없는 원주민들에게는 가공할 말세의 질병이 었다. 의학사가들은 이 병 하나로 16세기에 아메리카 주민 2천만 명이 사망했으리라 추산한다. 이렇게 극적인 불균등 상태를 초래한 이 요소들, 곧 무기와 병균과 기술 요소들을 저자는 ‘직접적 요인’이라 칭한다. 그러면 자연히 다음 질문이 제기된다. 왜 어떤 지역은 그런 강력한 요소들을 가지게 되었고 다른 지역들은 그렇지 못했는가? 그 차이를 가져온 것이 ‘궁극적 요인’들이다.

이 책이 규명하고자 하는 바는 궁극적 요인들이 어떤 식으로 작용해서 직접적 요인을 낳았는가 하는 점이다. 답을 구하기 위해 저자는 13,000년에 걸친 인류사의 진행 과정을 새롭게 추적한다. 유라시아 대륙에는 무엇
보다 작물화가 가능한 식물, 가축화가 가능한 동물이 다양하게 존재했다. 먼저 작물화 측면을 보자. 문명이 발전하려면 잉여 인구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농업 생산성이 높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주식(主食)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작물의 존재가 필수다. 그럴 가능성이 있는 식물 56종 중 32종이 지중해 지역에 존재하는 반면, 아메리카에는 11종만 존재하고,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에는 그보다 더 적은 수만 존재한다. 그러니 출발점부터 유라시아 대륙이 다른 곳보다 유리할 수밖에 없다. 비옥한 초승달 지역(Fertile Crescent)*이 대표적이다. 이곳에서 자라는 밀은 단백질 함유량이 높고 작물화가 용이했던 반면 아메리카의 옥수수는 단백질 함유량도 적고 작물 화도 매우 힘들었다.

*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부터 시리아, 팔레스타인을 거쳐 이집트까지 이르는 방대하고 비옥한 지역으로서 고대 문명의 발상지이다. 전체 지역 모양이 초승달과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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