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예슬 <새 옷> : 장벽을 부수는 페미니즘 그림책

신승아
신승아 · 삐딱하고 멜랑콜리한 지구별 시민
2023/08/12

남자는 파랑 여자는 분홍. 우리는 성별 이분법에 따른 색깔 공식이 인간의 생래적 본질이라고 믿어 왔지만, 해당 전제는 시대가 빚어낸 허구일 뿐 참이 아니다. 본래 붉은색은 남성성, 파란색은 여성성을 상징했다. 19세기 유럽에서 붉은색은 피, 전쟁, 강인함을 대표하는 색이었고, 파란색은 순수, 청량함, 순결을 대표하는 색이었다. 왕족이나 귀족 남성들은 권력과 명예를 드러내기 위해 금 장식이 달린 붉은 외투를 즐겨 입었고, 여성들은 성모 마리아와 닮은 자태를 드러내기 위해 파란 옷을 자주 입었다. 아시아에서도 동일한 공식이 적용됐다. 태극기의 빨간색은 양(남성), 파란색은 음(여성)을 뜻하며 주역에서도 양은 흰색, 음은 검은색으로 표현된다.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색깔 공식이 180도 뒤바뀐 까닭은 무엇일까? 시대적 맥락에 따라 몇 가지 낭설이 떠돌지만, 가장 유력한 주장은 자본주의와 결부되어 있다. 역사학자 피올레티의 연구에 따르면 1940년대에 이르러 미국에서 성별 색깔론이 등장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각 집안마다 아들, 딸 구별 없이 첫째가 입던 옷을 둘째에게 물려주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사업가들이 소비를 조장하기 위한 전략으로 남자는 파랑, 여자는 분홍 공식을 퍼뜨리면서, 문화적 풍토는 급변했다. 부모들은 시대에 발맞춰 아들에게는 파란 옷을 사서 입혔고, 딸에게는 분홍색 원피스를 사서 입혔다. 바로 이 시기에 형성된 문화가 오늘날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색깔 공식뿐만 아니라 성별을 둘러싼 사회 • 문화적 언어 중에는 그 역사가 채 200년도 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 이 말인즉슨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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