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재판본 유행의 서막 -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와 <노르웨이의 숲>
도서 재판본 유행의 서막 -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와 <노르웨이의 숲>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하지 못한 나에게도 백수시절이 있었다. 마침 그때는 평생 은행에 잘 다니다가 뒤늦게 사업에 뛰어들어 2년 만에 쫄딱은 아니고 집 빼고, 거의 가진 재산을 탕진한 아버지로 인해 집안의 가세가 많이 기울어진 시기였다. 부모님에게 눈치가 보이고 미안하기는 했지만 당장 취업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백수생활에 젖어가고 있었다.
백수라 당연히 시간이 많아 자연스럽게 중, 고등학교 동창 중 백수생활을 하는 친구들과 자주 어울렸다. 대학을 다닐 때는 각자의 인생에 몰두하느라 잘 만나지 못했었다. 그 시절의 백수는 나처럼 취업을 하지 못한 능력제로 백수, 적당히 놀다 선을 봐서 결혼하기를 원하는 자발적 백수, 임용을 기다리고 있는 교대나 사범대 출신의 국가적 백수로 나누어진다.
친구 H의 부모님은 5층짜리 건물을 소유하고 있었고, 당신들은 1,2층에서 목욕탕을 운영했다. 살림집은 5층에 있었는데 H는 자발적 백수에 속하는 친구였다. 새벽부터 목욕탕을 지켜야 하는 부모님을 대신하여 두 남동생을 케어하고 집안 살림을 도맡아했다. 부모님이 지인들의 모임이라도 가야 하면 언제라도 카운트 업무도 봐야했다.
우리 백수 친구들은 자주 H의 집에 모였었다. 1층에 들어서며 친구의 부모님에게 인사를 드리면 항상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셨다. H의 집 5층 창문엔 긴 줄에 연결된 바구니 하나가 달려 있었다. 우리가 오면 친구가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고 바구니를 창문으로 통해 1층으로 내린다. 그러면 친구의 부모님은 목욕탕 고객들을 위해 준비한 찬 음료수를 가득 담아주시고 친구는 줄을 5층으로 끌어올린다. 친구가 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