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의 퀴어談] 레즈비언이 되려면 페미니스트가 되어야만 할까?
2024/08/26
이웃집퀴어로 온라인에서 커밍아웃 하며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사진과 동영상 위주 플랫폼이라 말과 글이 주력인 나와 맞지 않는 채널이지만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공동 멸망 이후 인스타그램은 유튜브 다음으로 메인스트림이 되버려 영화 등 각종 정보를 얻으려면 안 할 수가 없는 상황. 정보란 게 애초에 평준화 될 수 없어 정보인건데 장삿속으로 마치 우리 모두 열린 정보의 축복을 받는 듯이 조장하는 sns, 그러나 정작 '팔로우 해야만' 하는 요즘 상황이 불쾌하다. 이전보다 훨씬 더 정보는 집중화, 자본화되어 배포되고 있다. 소통의 내용을 통제당하는 것만큼 소통 방식을 제한받는 것도 문제다.
어제는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퀴어심리상담 모임에 다녀왔다. 7-8명이 모여 심리상담사인 호스트가 진행하는 자조모임이다. 해외 있을 때면 이런 모임을 종종 해와서 딱히 새로울 건 없었다. 레즈비언 등 젠더퀴어(용어가 참 병신스럽다, 퀴어가 젠더의 하부개념인데.. 젠더젠더, 두 번이나 반복하는 비경제적 단어)를 대상으로 레즈비언인지 앨라이인지 알 수 없는 리더가 자연스럽게 세션을 이끌었지만, 일면 짜여진 이슈 없이 오가는 대화에 심리상담 참조용 임상 수집 용도로 무료 모임을 여는 게 아닌가 싶었다. 기브앤테이크, 나쁜 건 아니지만 그러기에는 호스트의 참여가 적었다, 그냥 듣고 있다는 느낌이 들뿐.
어김없이 최고령은 40대 아줌마 레즈비언인 나, 얘기를 주고받으며 요즘 여성, 지금 퀴어하는 이들의 고민과 생각을 들어보니 이해가 되기도, 안 되기도 하는 대목이 교차했다. 충격적인 건 참석자 대부분의 젠더감수성이 내 기준으로는 페미니스트에 가까울 만큼 도드라졌다는 사실이다. 여성으로 패씽(passing) 당한다는 표현이나, 트랜스젠더를 신체부위별 트랜스포메이션에 따라 세분해서 나누고, 무엇보다 여성을 약자를 너머 피해자로까지 인식하고 있었다. 특히 이들이 공통적으로 기억하는 역사적 사건(pivotal point)가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이라는 게 대단히 놀라웠다. 당시 피해여성이 여성으로...
@유영진 법학을 전공해서인지 피흘리는 현실을 이론과 연구로 구제할 수 없다는 체념, 그래서 가장 최소한을 양보하지 않는 고집이 있습니다 제가. 그런 세계가 싫어 다른 식으로 세상을 위해 일해왔지만 결과는 역시 나도 별 수 없구나..라는.
남의 말을 가스라이팅으로 오해하는 세대라 손 놓고 살지만 어제는 걱정이 되드군요. 내부의 당위에 겹겹이 쌓인 채로.. 외부의 당위와 싸우겠다는 모습이, 웬지 질 싸움에 나가는 사람을 보는 기분인.
스스로 공격당할 여지를 만들어내는 학문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
근래의 피해자 페미니즘(victim feminism) 조류와 관련하여 생각할 것이 아주 많은 글 잘 읽었습니다. 특히 사회과학 분야의 연구자이자, 제 자신을 사회 운동가보다는 분석가로 정체화하는 사람으로서, 아래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성희롱도 옳지 않지만, 학문하는 사람으로서 강단에 서서 설득 없는 개인사, 감정을 전달하는 것은 적어도 사회학도의 행위로는 부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저 만큼의 수습할 수조차 없는 무게를 안고 어떻게 객관화라는 학위의 관문을 통과할지, 구경꾼이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당한 자, 힘든 자, 상처받은 자... 모두 딱하고 귀한 이름들이다. 나 역시 그런 자, 피해자, 그녀들의 일부다. 그럼에도 이 역사적인 전쟁의 제일 앞자리에는 건강한 인간, 주관화의 늪에 빠지지 않을 만큼 사고와 행동이 민첩한 레이서가 서주길 바란다. 눈물과 통곡은 싸움을 이겨내지 못한다."
본문 내용을 오마이뉴스나 기타 진보계 대안매체에 칼럼으로 기고하시는 것은, 물론 극심한 도덕적 비난과 공격을 받겠지만, 더욱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 봤습니다.
@유영진 법학을 전공해서인지 피흘리는 현실을 이론과 연구로 구제할 수 없다는 체념, 그래서 가장 최소한을 양보하지 않는 고집이 있습니다 제가. 그런 세계가 싫어 다른 식으로 세상을 위해 일해왔지만 결과는 역시 나도 별 수 없구나..라는.
남의 말을 가스라이팅으로 오해하는 세대라 손 놓고 살지만 어제는 걱정이 되드군요. 내부의 당위에 겹겹이 쌓인 채로.. 외부의 당위와 싸우겠다는 모습이, 웬지 질 싸움에 나가는 사람을 보는 기분인.
스스로 공격당할 여지를 만들어내는 학문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