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나라의 공주님

조제
조제 · 예술가
2023/03/02
누군가 소녀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준 사람이 없었다. 웃어 준 사람도 없었다. 안아 준 사람도 없었다. 들리는 건 소리치는 소리, 느껴지는 건 느닷없이 아픈 매, 보이는 건 차갑거나 화가 난 얼굴뿐이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소녀는 세상으로부터 마음을 닫는 법을 배웠다. 마음을 닫는 것은 한번 배우면 아주 쉬운 일이었다.

현실 세계에 마음을 닫은 대신 소녀가 발견한 건 '이야기'였다. 책을 처음 읽던 날이 생각난다. 그림책 속에는 언제나 웃는 짓는 엄마, 잘못해도 용서해주고 화내지 않는 아빠, 다정한 오빠와 친구들이 있었다. 아무려나. 동물들조차 책 속에서는 소녀에게 웃어 주었다.

이곳에 완벽한 세계가 있었다. 책표지를 넘기고 그안의 쓰여져있는 문장들을 하나씩 읽다보면 바깥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사라져버렸다. 그러다 눈을 들면 이 낯선 곳이 어딘가 싶어 머리가 먹먹해졌다.

소녀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읽었다. 도서관에 처음 간 날은 높은 책장 가득찬 책들을 보고 너무 행복해 마음이 터질 뻔 했다. 이 세상에서 그녀가 바랄 수 있는 모든 행복은 바로 그곳에 있었다. 이외에 더 큰 것은 바라면 다 빼앗길 것 같았다.

쉿, 조용히. 들키면 안돼. 이것으로 만족해. 나는 이곳에서 살아갈거야.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기억할 수 없는 어린 시절부터 소녀는 악몽에 시달렸다. 꿈이 너무 무서워 불을 끄고 잘 수도 없었다. 그날밤도 소녀는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안데르센 동화집>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잠들면 꾸게 될 악몽이 무서워 눈이 절로 감겨질 때까지 기를 쓰고 읽었기 때문에 그녀의 잠든 작은 이마는 읽다만 '인어공주' 속 페이지에 푹 파묻혔다.

그리고 그날밤 소녀는 처음으로 악몽을 꾸지 않았다. 대신 꿈속에서는 잠들기 전까지 마지막으로 읽었던 인어공주의 책 페이지가 펼쳐졌다.

인어공주가 꿈속 책의 페이지를 열고 뛰...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작가이자 친족성폭력 생존자입니다. 오랜 노력 끝에 평온을 찾고 그 여정 중 알게 된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주로 희망과 치유에 대해서. '엄마아빠재판소', '살아있으니까 귀여워' '죽고 싶지만 살고 싶어서' '은둔형 외톨이의 방구석 표류일기'를 썼습니다.
117
팔로워 94
팔로잉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