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펜하이머> 분열을 관측하는 놀란의 영화 방정식

고요한 · 책 파는 영화애호가
2023/09/06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왼손잡이다. 식당에 가서 메뉴판을 들면 뒷면부터 펼쳐본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대칭, 미러링, 도치 같은 관념에 매혹 당했다는 수줍은 고백도 흥미롭다.  놀란을 영화계에 깊이 각인시킨 <메멘토>의 연출이 대표하듯 영화를 시간순으로 친절하게 늘어놓기보다 플롯을 쪼개고 쪼개, 마구 뒤섞어 놓는 비선형적인 연출을 선호하는 것도 어쩌면 왼손잡이라는 점이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놀란이 특수효과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배경이나 사물을 만들고 지우는 대신 무중력씬을 위해 방을 360도 회전시키거나 3년간 옥수수밭을 일구고 태워버리고 비행기를 격납고에 충돌시키는 방법을 선호하는 건 맞다. 하지만 본인의 주장에 따르면 영화라는 장르에서 최고의 특수효과는 편집이다. 숏과 숏을 이어 붙이는 방법에 따라 특수한 효과가 생기니 특수효과의 전문가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예술가가 아니라 장인이라고 생각하는 부분도 재밌다. <천국의 나날들>, <씬 레드라인>을 만든 테렌스 맬릭처럼 창작자의 내면에서 비롯된 무언가를 표현하거나 벗어나려 하기보다, 사람들과 소통하고 기대와 경험을 활용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게 본인의 작업 스타일이라고 밝혔다(『크리스토퍼 놀란: 첫 작품부터 현재까지, 놀란 감독의 영화와 비평』 중에서』).

놀란 스스로가 밝힌 이런 개인적인 특징은 당연하지만 <오펜하이머>에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대과거, 과거, 현재의 3가지 시간대를 넘나드는 비선형적 플롯을 뛰어난 장인의 솜씨를 발휘해 본인의 장기이자 특기인 편집이라는 특수효과로 조밀하게 이어 붙인 또 한편의 크리스토퍼 놀란 영화다.

■ <오펜하이머>의 알파와 오메가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의 아버지’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미국의 핵개발 프로젝트인 맨해튼 계획에 참여하여 원자폭탄을 개발한 역사에 대한 전기 영화다. 오펜하이머(줄리언 머피)의 젊은 시절에서 맨해튼 계획으로 이어지는 기본 시간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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