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않는 강

아듀 레비나스
아듀 레비나스 · 글쓰기 좋아하는 의사
2023/02/09
1.
그림은 빛이 바래있었다. 어둡고 침울했다. 어디에도 이 그림을 그린 작가가 우리나라 근대 미술의 대표라는 것을 알려줄 만한 것이 없었다. 도화지에다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은 이중섭의 시대별 작품들 중 덩그러니 떨어진 외딴 섬 마냥 한 쪽 구석에 전시되어 있었다. 작품에 대한 짤막한 소개를 지나치지 않은 것은, 거리를 지나가다 보이는 병원 간판을 놓치지 않는 직업병 때문이었으리라. 「이중섭의 주치의 유석진 박사 소장 작품」 해방 후 중섭은 그의 아내 야마모토 아사코를 일본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지독한 가난도 문제였지만 일본인은 자국으로 돌아가라는 사회적 처분 때문이기도 하였다. 얼마 후면 다시 만날 것이라는 기대가 몇 달이 되고, 몇 년이 되고, 급기야 그의 마지막 작품의 이름처럼 '돌아오지 않는 강'이 되고 말았을 때 그는 정신병을 앓고 말았다. 자신은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 함묵증과 거식증으로 드러났을 때 그는 정신과 전문의 유석진 박사의 병원에 입원했다. 중섭은 주치의에게 도화지와 물감, 크레파스 등을 사다달라고 간청하였다고 한다. 당시 예술 치료에 관심이 있었던 유석진 박사는 여러 가지 그림 도구를 구해주었고, 주치의에 호의로 입원실에서 중섭은 정신을 차려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그 다음해 중섭은 적십자 병원에서 무연고자로 생을 마감하였다.

2.
그는 자신이 폐암 말기 환자라고 했다. 30대 중반에 폐암 말기라니. 환자와 나는 물끄러미 서로를 말없이 쳐다보았다. 잠간의 적막은 진료실에 뭘 좀 가지러 들어온 직원 때문에 깨졌고, 이내 나는 환자의 병력을 캐야 하는 의사 본업의 자세로 돌아왔다. 그는 수차례 받았을 과거 병력에 대한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해 주었다. 일 년 전 너무 숨이 차 병원에 갔더니 폐에 물이 찼다고 했다. 물만 빼면 되는 줄 알았는데 대학병원의 담당 교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이 찬 원인이 폐암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그 암이 벌써 몸 이곳저곳에 퍼졌다는, 즉 말기 암이라는 이야기를 차분히 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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