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 <황혼의 불시착> 마지막회 : 에필로그

오진영
오진영 · 작가, 칼럼니스트, 번역가
2023/10/29
마지막회 - 에필로그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인연에 마음을 빼앗겼던 그 여름이 지나갔고 1년이 흘렀다.

유리상자 안 인형처럼 곱게 모셔놓고 상상 속 애착의 대상으로 삼았던 젊은 남자와는 그 후로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했다.
석달 동안 일방적인 사랑 고백을 한 끝에 마지막으로 쓰려다 못 보낸 편지에 적었던 것처럼,
"어디선가 마주치면 아! 한때 나를 짝사랑했던 누이였지, 생각하며 반갑게 대해주는"
그런 일은 없었다. 

여자는 페이스북에서 가끔 남자의 이름을 눌러 그이의 담에 가봤다.
남자는 원래도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자신의 일상을 드러내는 일이 없었다. 
나 이런 데 가봤어요, 이런 걸 읽었어요, 이런 걸 먹었어요, 같은 포스팅이 일체 없는 남자의 담에 갔다가
정치 이슈에 대한 촌평이 이따금씩 올라와 있으면 여자는 빨간 하트를 누르고 '맞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정도의 댓글을 적고 나오곤 했다.

나를 거절했다고 그대를 원망하는 마음 없다오, 
오히려 공연한 희망을 걸 빌미를 주지 않았던 깔끔한 대처에 감사한다오,
라는 뜻을 전하고도 싶었으나 그 또한 부질없는 일이었다. 

벼락에라도 맞은 것처럼 인생에서 다시 없을 줄 알았던 갈망이 끓어올라 미칠 것 같았던 시간이, 
떠올리면 이불킥하게 만드는 기억 속 여러 아이템 중 하나로 자리 잡아갈 무렵이었다. 

개인적인 친분은 없이 이름만 알고 지내는 한 페친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아무개가 너를 저격하는 글을 올리고 있으니 알고 있으라는 내용이었다. 

그 아무개는 여자와 젊은 남자가 처음 만났던 바로 그 모임을 주관했던 사람이었다.
그 모...
오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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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와 오진영tv 유튜브로 시사 평론을 쓰는 칼럼니스트. 포르투갈어권 문학 번역가.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 파울로 코엘료의 <알레프> 등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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