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 빈곤과 청소년, 10년의 기록

신승아
신승아 · 삐딱하고 멜랑콜리한 지구별 시민
2024/01/30

“낳음 당했다.” 요즘 MZ 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신조어다. 자본이 없으면 계층 이동이 불가능하고, 요람에서 무덤까지 가난이 따라붙는 시대. 노력해도 신분 상승을 꿈꿀 수 없음을 몸소 체감한 청년들은 동사의 세계에 종말을 고하고 피동사의 세계로 진입했다. 자기 비하와 열패감이 뒤섞인 세계는 암암리에 패륜과 폭력을 용인하며 가난을 멸시하는 풍조를 재생산한다. 트위터에서는 “가난하면 애 낳지 말라”라는 울분 섞인 글이 수천 개의 알티를 탄다.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잊을만하면 ‘가난도 가정 폭력’이라는 주장이 수백 개의 공감을 얻는다. 초등학생들은 친구 부모의 직업과 월 소득, 주택 소유 형태에 따라 신종 거지 계급을 만들고, 어린이들의 장래희망은 ‘유튜버’와 ‘건물주’가 1,2위를 다투는 실정이다. 이 와중에 가난한 자들은 게으르고 염치가 없으며, 기초생활수급자는 전부 악마라는 혐오 발언이 설득력을 얻고 있으니, 첩첩산중이 따로 없다.

어쩌다 세상이 이 지경이 되었을까. 가난한 사람의 출생을 통제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는 이들도, 과격한 주장을 비난하며 도덕적 우월감을 과시하는 자들도 그저 안타깝다. 감히 말하건대 가난은 성공과 실패의 이자 구도가 아니며, 개인이 극복해야 할 과제는 더더욱 아니다. 대표적으로 자식 하나 바라보며 사는 희생적인 어머니 서사, 집안을 먹여 살리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는 가장 서사는 가난의 근원을 개인의 무능력으로 치환하여 국가의 원죄를 덮어버렸다. 빈민들이 우리는 미래가 없다고, 제발 사람답게 살 권리를 달라고 울부짖을 때 응답해야 할 주체는 가족이 아니라 국가다. 한데 국가는 경제 발전에 동원될 때만 빈민들을 ‘국민’으로 소환하고, 막상 가난하고 못 배운 자들의 피눈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룬 후에는 그 존재를 말끔히 지워버리거나 도시 외곽으로 추방시켰다. 다시 말해 국가가 앞장서서 빈민들을 살해한 것이다. 

국민이되 비국민의 지위를 가진 빈민들은 도시의 유령이 되어 사회 주변부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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