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인

박선욱 · 시, 동화, 소설 및 평전을 씁니다.
2023/04/17
정치풍자 콩트

   
달인

   
박선욱
   
   
“각하. 청계천에서 지금 난리가 났습니다.”
비서실장이 집무실에 뛰어들며 호들갑을 떨었다.
“무슨 일이오? 무슨 일인데 그렇게 숨이 넘어가시오?”
이메가는 요즘 장안에서 제일 시청률이 높다는 사극의 주인공처럼 한껏 점잔을 빼며 비서실장을 쳐다보며 물었다.
“광우병에 걸린 소를 수입하지 말라고 시민들이 촛불시위를 열고 있습니다.”
“뭐, 뭐라구? 광우병에 걸린 소를 수입하지 말라구?”
“예, 각하. 연일 수만 명의 시민들이 청계천과 광화문, 시청 일대에서 데모를 벌이고 있습니다.”
“아니, 질 좋은 미국 소를 수입하여 값싸게 먹으면 될 일을 가지고 저리 난리들이라니 쯧쯧…….”
이메가가 혀를 끌끌 차며 비서실장을 노려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이메가의 가늘게 찢어진 눈이, 숫제 보이지도 않았다. 그 바람에 비서실장은 어느 곳에 초점을 맞추고 쳐다봐야 할지 몰라 쩔쩔 맸다.
“이봐!”
“옛, 각하.”
“각하란 말은 삼가라고 했지 않소? 그게 어느 때 호칭인데……야당 애들이 들으면 나를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공격하지 않겠냔 말이오.”
“아, 예에. 저어기, 과거에 제가 총통 각하와 전통 각하를 하도 많이 불러서 버릇이 되다 보니 글쎄, 그만…….”
“남들 보기에 민망하니 그 호칭은 제발 그만두시오.”
“예, 각하.”
“어허! 또, 또……. 어쨌든, 청계천의 일을 좀 더 소상히 알아본 다음에 보고하시오.”
“옛 각하!”
비서실장이 문을 나간 뒤 이메가는 의자 뒤로 머리를 기댔다. 피로감이 일시에 몰려왔다. 폭발적인 지지와 압도적인 표차로 여당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될 때까지만 해도 세상이 꿀처럼 달콤해 보였는데……막상 청와대의 주인이 되고 보니 왜 그리도 걸림돌이 많은지 알 수가 없었다. 집무실 창문을 열자 청와대 마당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대운하 송>이 경쾌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메가는 평소 이 노래만 들으면 불끈 힘이 솟곤 했다. 집무실 책상 위에는 <대운하>라고 써놓은 포스트잇이 놓여 있어서, 노래를 듣지 않을 때도 그것만 바라보면 공연히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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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실천문학》 으로 등단. 시집 《회색빛 베어지다》 《눈물의 깊이》 《풍찬노숙》, 인물이야기 《윤이상》 《김득신》 《백석》 《백동수》 《황병기》 《나는 윤이상이다》 《나는 강감찬이다》 등. 《윤이상 평전: 거장의 귀환》으로 제3회 롯데출판문화대상 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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