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노숭의 짠내나는 유배 일기 (1) : “이러려고 양반 했는지 자괴감이 와”, 유배지에서의 인원 체크

박영서
박영서 인증된 계정 · 울고 웃는 조선사 유니버스
2023/04/23
(EBS)

어쩌면 자존심이야말로 우리를 우리답게 하는 무언가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때론 엄청난 돈을, 크나큰 명예를, 그리고 그보다 소중한 무언가를 포기하면서까지 자존심을 지키고자 하죠. 그리고 어쩌면 또, 그 자존심이라는 모호한 글자 속에는 ‘옳은 것에 대한 자신만의 신념’ 또한 들어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옳음이라는 가치를 먹고 사는 조선의 지식인, 사대부들에게 자존심에 대한 문제는 중대한 실존적 문제와 맞물려 있었습니다.
   
그런 양반의 자존심이 팍팍 무너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유배인데요. 한때 슈퍼 루키라 불리는 양반일지라도, 한때 서울의 명문 가문 중 하나라 불리던 가문의 후손일지라도, 때가 달라지고 빽이 없어지면 초라한 남색의 알거지가 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교도소 안에서도 빈부격차가 있듯, ‘유배씬’에서도 돈은 삶의 질을 결정하는 마법의 열쇠였죠.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양반은 ‘지지리 궁상 프리미엄’이 남들보다 두 배 세 배 네 배 붙어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돈 없는 서러움보다 그들을 더 흔들었던 건, 그들에게 남은 최후의 자존심, 즉 양반이라는 신분이 송두리째 흔들리던 점고(點考)였어요. 점고란, 사람들을 줄 세워 놓고 명부에 하나하나 점을 찍어서 사람 수를 세던, 옛날 스타일의 인원 체크인데요. 유배객들이 간밤에 도망가지는 않았는지, 건강에 이상이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죠. 따라서 유배객들은 최소 한 달에 한 번, 많으면 두세 차례씩 직접 관아로 나아가 점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점고는 관할 지역의 죄인을 책임지는 지방관은 물론이요, 평소라면 자신에게 굽신대야 할 아전이나 포졸들까지도 죄인(aka 양반)을 대놓고 업신여기는 자리였습니다. 당연히 양반에게는 너무나 치욕적인 순간이었죠. 그것이 얼마나 치욕적이었는지, 한 가지 이야기가 『병세재언록(幷世才彦錄)』이란 책에 남아 있어요. 한때 삼도수군통제사를 지냈던 조완(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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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를 유영하는 역사교양서 작가, 박영서입니다.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을 썼으며, 딴지일보에서 2016년부터 역사, 문화재, 불교, 축구 관련 기사를 써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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