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춤추는 몸 뒤의 포옹, <아노라> 환상을 파는 대신 인간의 물성을 보여주다

홍수정 영화평론가
홍수정 영화평론가 인증된 계정 · 내 맘대로 쓸거야. 영화글.
2024/11/26
※ '씨네21'에 <아노라>에 관한 기고를 했습니다. 
이번에는 특히 쓰고 싶었던 글이라 더 각별하게 다가오네요. 

글에서도 설명했습니다만, <아노라>를 본다는 것은 결국 첫장면과 끝장면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통상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도 일컬어지는 첫장면, 그리고 끝장면에 주인공 '아노라'에 대한 션 베이커의 태도가 고스란히 베어있기 때문이죠. 또 아노라의 사랑스럽지만 이상한 행동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도 중요한 포인트죠.

아래 글에는 <아노라>에 대한 스포일링이 있습니다. 

<아노라> 스틸컷
<아노라>의 첫 장면은 인상 깊다. 이곳은 스트립 클럽. 춤추는 댄서를 차례로 지나치던 카메라는 문득 한곳에서 걸음을 멈춘다. 거기에는 애니(마이카 매디슨)가 있다. 카메라는 천천히 그녀를 향해 다가간다. 여태 댄서의 외설적인 몸을 담아내던 카메라는 춤추는 애니의 몸을 지나쳐, 어느덧 그녀의 얼굴 앞에 친근하게 다가선다. 이 클로즈업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선사한다. 먼저 그녀의 표정을 우리에게 자세히 보여주고, 다음으로 그녀의 얼굴에 집중하는 데 방해가 되는 외설적인 이미지를 스크린 바깥으로 추방한다. 통상 우리에게 익숙한 클로즈업의 기능은 무언가를 크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스크린을 가득 채운 애니의 얼굴만큼이나 인상 깊은 것은, 프레임 바깥으로 밀려나는 성적인 이미지다. 다른 것을 내보내고,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 이 순간의 묘한 클로즈업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첫 장면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우리는 이 장면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많은 이들이 숀 베이커의 주된 관심사는 성 노동 산업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의 진정한 관심사는 ‘미국이 파는 이미지’에 가깝다. 현실의 흉터를 말끔히 지운 채 우리를 향해 방긋 웃는 환상적인 이미지. 그것은 포르노인 경우도 있고(<스타렛> <레드 로켓>), 디즈니랜드인 경우도 있다(<플로리다 프로젝트>). 숀 베이커는 그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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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한 영화잡지사에서 영화평론가로 등단. 영화, 시리즈, 유튜브. 문화 전반에 대한 글을 씁니다. INF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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