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꽃
살구꽃 · 장면의 말들에 귀를 모아봅니다.
2023/06/20
IMF 때였다. 우리는 그때 기찻길이 가까운 동네에 살고 있었다. 겨울이었고 대학교 앞의 상가들은 매출이 뚝 떨어지는 방학을 맞고 있었다. 내가 하던 화방도 예외는 아니어서 아침 느지막이 문을 열고 일찌감치 문을 닫고 오는 날이 잦았다.


그날도 화방에서 거의 놀다시피 한 식구들이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어스름한 어둠이 내리고 눈발까지 날리는 쌀쌀한 날씨였다. 나는 얼른 가서 저녁 해먹고 쉴 생각으로 서둘러 걷는데, 남편은 기차가 지나가는 바로 옆길에 멈춰 서서 뭔가를 찾듯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거기서 뭐 해?”


뒤돌아 묻는 내게 남편이 빨리 와보라는 손짓을 했다. 남편은  종이로 된 구두상자를 앞에 두고 엉거주춤 앉아 있었다.


“야~ 강아지다, 강아지!”


상자 속을 들여다 본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고 나는 가슴이 뛰었다. 거기엔 눈도 뜨지 않은 바둑이 새끼 네 마리가 꼬물거리며 추위에 떨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보일러를 올려 방을 덥히고 헌옷을 깔았다. 아이들은 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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