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수유 중

박순우(박현안)
박순우(박현안) · 쓰는 사람
2023/06/19
갑자기 찾아온 생명들

어제는 일요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들과 신나게 여기저기 쏘다니다 귀가했다. 아이들을 집안으로 들여보내고 나도 들어가려는데, 반대쪽 마당에 서있던 남편이 조용히 와보라며 손짓을 한다. 무슨 일인가 싶어 살금살금 다가가니 마당 한쪽 구석에 고양이 새끼 두 마리가 뒤엉켜 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자세히 살펴보니 탯줄과 태반이 그대로 붙어있다. 게다가 두 녀석이 서로 엉겨서 쉽게 떨어지지도 않을 것 같다. 바닥에 있던 풀과 나무줄기도 온몸에 들러붙거나 감겨 있다. 해질 무렵이어서 모기도 많은데다 태반 냄새를 맡은 파리도 잔뜩이다.

혹시나 싶어 이리저리 주위를 둘러보니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 움직임이 없는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더 눈에 띈다. 큰일이다. 이를 어쩌나. 죽은 건가,하고 있는데 근처에서 또 찡찡 대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나는곳을 보니 로즈마리 나무 아래에 갇힌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보인다. 살려달라고 아우성 치듯 콩알만한 녀석이 엄청 시끄럽게 울부짖는다. 얘는 너무 살아있는데 어떻게 구하지, 하고 있는데 죽은 줄 알았던 새끼도 조금씩 움직임을 보인다. 살아 있었구나. 

자세히 보니 네 마리 모두 탯줄이 아직 끊어지지 않아 태반에 몸이 묶여있고, 축축한 몸과 태반 탯줄에 온갖 이물질이 엉겨붙어 있다. 영양분이 한가득일 태반을 따라 파리떼가 기승이다. 급하게 집으로 달려가 정원용 가위와 깨끗한 가위 하나를 꺼내왔다. 포트에는 물을 팔팔 끓였다. 남편은 작고 깨끗한 박스 하나를 구해왔다.

정원용 가위로 로즈마리 나무 아래에 갇힌 새끼의 몸을 감싼 줄기들을 다 잘라내 간신히 구출하고, 나머지 아이들의 몸을 감고 있는 풀들도 잘라냈다. 깨끗한 가위는 뜨거운 물에 담갔다 뺀 뒤 한 마리씩 탯줄을 끊어냈다. 새끼 고양이들은 계속 낑낑 대며 발버둥을 치고, 남편은 그런 아이들의 몸을 감싸는 줄기들을 추려내고, 나는 행여나 다칠세라 조심조심하며 가위질을 했다.

세 마리의 탯줄을 모두 자르고 마지막 한 마리의 탯줄을 자르려는 순간, 앞발가락 ...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이것저것 씁니다.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1.1K
팔로워 1.4K
팔로잉 6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