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미술관> : 그림 속 권력 이야기 by 이유리

신승아
신승아 · 삐딱하고 멜랑콜리한 지구별 시민
2023/08/23

1939년에 개봉한 영화 <오즈의 마법사>는 꿈과 희망, 사랑과 자선을 담은 메시지로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맑고 순수한 목소리로 무지개 너머의 행복을 노래하는 주인공 '도로시'에게 매료되었다. 시각적인 매력도 엄청났다. 흑백 무성 영화가 주를 이루던 시대에 화면이 컬러로 전환되는 장면은 더없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것도 몰랐다. 지친 삶을 위로해 준 이 영화가 폭언, 폭력, 착취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1920~1960년대 미국 할리우드는 숨 쉬듯이 명작을 찍어내며 명실상부 황금기를 누렸지만, 그럴수록 예술가들의 삶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할리우드에는 인권 개념이 전무했다. 배우로 성공하려면 남자들도 성 상납을 하는 게 관례였으니, 여성과 미성년자가 감내해야 할 수모는 더욱 가혹할 수밖에 없었다. <오즈의 마법사> 속 영원한 '도로시'로 길이 남은 배우 '주디 갈란드' 또한 관리라는 미명 하에 제작사와 감독의 횡포에 시달려야 했다.

영화 제작사  MGM 측은 당시 16세였던 주디가 12세 시골 소녀 도로시 역을 맡기엔 다소 통통하다는 이유로, 메스암페타민(필로폰)을 강제 투여했고 식사량은 하루 한 끼 치킨 수프만 제공했으며, 1일 기준 담배 수십 개비를 피우도록 강요했다. 촬영장에서도 수난은 계속됐다. '빅터 플레밍' 감독은 주디를 따뜻하게 보살펴주지는 못할망정 NG가  날 때마다 뺨을 후려쳤다. 함께 출연한 배우들도 어린 여자아이가 주인공인 것을 못마땅해하며 왕따를 시켰다. (역설적이게도 주디에게 친절을 베푼 배우는 '서쪽의 나쁜 마녀' 역을 맡은 '마가렛 해밀턴'이 유일했다.) 주디가 모욕당하는 것에 비례하여 작품의 완성도는 높아졌다. 영화 개봉 이후, 주디 갈란드는 귀여운 외모와 청아한 목소리로 쇼 비즈니스 계의 스타로 발돋움했지만, 영혼은 갈가리 찢겼다. 술에 취해 무대에 오르는 일이 다반사였고 남은 일생 동안 약물에 의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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