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보고 있기에는 시간이 아까워
2024/08/07
‘요즘 신세대의 행동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얘기를 나도 자주 한다. 신세대와 완벽히 분리된 삶을 살고 있는 데다가 시간도 유행도 빠르게 흘러가니 그들을 이해하는 편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먼 존재는 결국은 이해할 수 없다. 이건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섭리 같은 것이다. 다만 영상을 빠르게 재생해서 보는 신세대의 행태에 대한 얘기를 할 때는 편을 바꿔서 신세대를 옹호할 수밖에 없다. 나도 대부분의 영상을 고속으로 보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날 때부터, 혹은 재생 속도 조절이 가능해진 직후부터 이렇게 산 것은 아니다. 나와 내 이전 세대가 가진 보편적 습성대로 아무 조작 없이 작품을 순수한 정속으로 감상했다. 그러던 것이 잡다한 애니메이션을 챙겨 보기 시작하며 속도를 조절하게 되었다. 분기별로 새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면 일단 전부 맛을 보고 계속 볼 작품을 정해야 하는데, 많은 작품을 다 소화하기가 시간적으로 벅찼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영상물 심의 위원회나 잡지 기자처럼 업무로 보는 것도 아니고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 싶기도 하지만, 그때는 그게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는 취미였던 터라 작품들에 대해 나름대로 감상을 말할 수 있어야 나의 가치가 높아졌다. 요컨대 감상이 아니라 정보 습득을 위한 영상 시청은 정속으로 시간을 모두 지불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그 습관은 그대로 이어져서, 꼭 집중해서 감상하고 싶은 애니메이션이 아니면 1.5배로 보고, 좀 잘 봐야겠다 싶으면 1.2배, 한 순간도 놓치면 안 되겠다 싶을 때만 정속으로 보는 시청의 ‘기어’가 완성되었다. 예술 감상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영상 예술의 고속 감상은 소설을 바쁘다는 이유로 대사만 읽는 수준의 언어도단적 행위지만, 정보 습득이라는 관점이 섞여들면서 딱히 모든 순간을 다 제작자의 의도대로 즐길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신문 기사를 대강 읽는 건 보편적이고 심지어 어느 정도 당연한 일인 것처럼.
이후로 코로나 유행 시대가 되면서부터는 팟캐스트를 들으며 산책하...
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